디지털사회 제 19호: 기계학습의 시대 사회적 문제 해결의 열쇠 ‘창의성’
작성자
ssk
작성일
2019-04-18 04:59
조회
3070
기계학습의 시대 사회적 문제 해결의 열쇠 ‘창의성’
근래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의 키워드는 단연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귀가 솔깃하게 하고 싶을 때는 인공지능이라고도 하는데, 인공지능이란 컴퓨터로 하여금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갖게 하는 기술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고 기계학습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데이터화하고 기계에게 입력하여 누군가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던질 때 기계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이것이라고 하였다"는 식의 대답을 하게 만드는 하위 기술을 뜻한다. 즉, 기계로 하여금 사람을 학습하게 한다는 뜻에서 기계학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러한 기계가 "지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기계에서 나오는 답이 흡사 사람이 준 것 같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사람이 만들어놓은 대답에 기반한 대답이므로 이렇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다가 기계학습에 현재 제일 많이 사용되는 "심화학습"(deep learning) 알고리즘은 인간의 신경망을 본딴 수학적 구조에 기반돼있으니 지금 말하는 인공지능이 곧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능으로 발전한다고 상상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여겨지는 상황이다.
지능은 개인이 가진 능력이나 조건 가운데 일반적으로 제일 으뜸으로 여겨지는 것이고, 실제로도 개인의 성공과 지능의 상관관계가 높은 현실에서(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인 거친 스포츠인 미식축구 프로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선수들의 연봉과 상관계수가 제일 높았던 변수는 키, 몸무게, 달리기 등 신체적인 조건이 아닌 대입 수능 점수였다고 한다) 인간의 지능을 기계가 넘보고 있다는 상상은 누군가에겐 인간의 설자리가 위협받는 어두운 미래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을 때는 그 이후의 것을 상상하며 또다른 질문을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기에(물론, 언젠가 사람처럼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기계가 등장한다면 그 때는 또다시 기계와 사람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두려움이 생길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에게 어떠한 본질적인 변화가 생길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인공지능이 아직 갖지 못하였지만 인간은 갖고 잇는, 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따지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그것은 바로 "창의성"이다. 학습된 기계가 아무리 빠른 속력으로 답을 준다고 하여도 결국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데이터로부터 계산하여 찾아내는 것이기에 우리가 사람에게 기대하는 창의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창의성의 문제는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 계산하는 기계라는 개념이 등장하던 컴퓨터 초기 시대부터 제기되었다. 컴퓨터란 단순 계산을 빠르게 하는 목적으로 개발되는 것이었기에 모든 측면에서 당장 사람을 능가하거나 대체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무리였었겠지만 컴퓨터가 어디까지 사람과 비슷해질까 하는 상상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1950년대에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클로드 섀년(Claude E. Shannon)과 대화한 뒤에 “섀년은, 언제가 우리가 컴퓨터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라며 단순 계산보다 여러 발 더 나아간 창의성의 영역을 생각하고 있던 섀년에 대해 "과도한 공상을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일화가 있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 창의성이란, 초당 몇 회의 연산을 할 수 있는지로 측정할 수 있는 단순계산력과 달리 측정하기도, 평가하기도 어려운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생각되어왔기에 1990년대 이후에도 몇 명의 비주류 학자들을 제외하고서는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본격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지금도 사람이 만들어낸 음악이나 회화를 데이터화한 뒤 컴퓨터에게 학습시켜 여러 스타일을 합성한 듯한 그림을 만들거나 비슷한 음악을 접붙이는 기술적 응용을 제외하고서는 인공지능과 창의성의 결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최고수준의 인공지능 기술인 기계학습이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 창의성의 결과물을 데이터로 필요로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창의성이란 무엇이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창의성은 어떠한 관계이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논할 적절한 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창의성에 대한 학술적 연구 가운데 현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20세기 중반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가 주창한 인간 욕구 단계론이다. 그는 인간의 욕구는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있다고 하였다.
1. 음식, 온기, 휴식을 통한 생리적 욕망 (physiological needs: food, water, warmth, rest)
2. 안전의 욕구 (safety needs: security, safety)
3. 친밀감과 우정을 통한 소속감와 사랑의 욕구 (belongingness and love needs: intimate relationships, friends)
4. 지위와 성취감을 통한 자존감의 욕구 (esteem needs: prestige and feeling of accomplishment)
4. 창의성 발휘를 통한 자아실현의 욕구 (achieving one’s full potential, including creative activities)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현대사회의 역사를 통해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욕구를 순서대로 해결하게끔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19세기에 시작된 산업화가 가져온 물질적 풍요는 1, 2 단계의 욕구를 충족시켰고, 20세기의 통신혁명은 3, 4 단계의 소통과 인정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렇다면, 창의성 발휘를 통한 최고단위의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잇을까?
창의성 발휘를 통한 자아실현과 인공지능을 연결짓는 단서를 찾기 위하여서 20세기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보옴(David Bohm)이 내린 창의성의 정의를 생각해볼 수 있다. 보옴은 창의성을 "겉보기로는 다른 객체들 사이의 공통점을 인지하여 고차원적인 질서를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렇게 찾아진 고차원적인 질서는 세상의 복잡한 양상들을 뚫어내고 지금까지 아무도 만들어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원리가 되는데,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베토벤의 9번 교향곡 같은 인류 예술의 정수들이 바로 이렇게 감각을 통해 전달된 자극들로부터 찾아낸 고차원적인 질서를 빛깔과 소리로써 표현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 아래 세상은 조화로와지며, 개인은 자신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의성의 문제에서 인공지능의 현주소는? 먼저,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그림이나 음악이 소수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고 극장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에 비하면 질과 다양성에서 비견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돌려서 인간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 발휘를 돕는 도구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인간에게는 창의성 발위를 위한 전례 없는 높은 수준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것들은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속력으로 찾고 흉내내는 기계 학습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기계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찾아내고 전달하는 데 매우 능숙하기 때문에 정형화되어 뻔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은 기계에게 맡기고 기계가 아직 사람을 따라하지 못하는 진정한 창의적인 과정에만 인간이 집중한다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창의적인 결과물들을 빨리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쉬운 이해를 위하여 현재 필자가 재직중인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머릿속에 멜로디가 떠올랐을 때 인공지능이 데이터로부터 어울리는 것을 찾아 작곡과 편곡을 완성시켜준다든지, 기본 스케치를 입력하기만 하면 인공지능이 그에 어울리도록 색칠을 해주게 하는 등, 창의성 발현을 위한 장벽을 제거해줌으로써 사라질뻔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세상의 빛을 보도록 해주는 문화 예술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것을 다시 기계에 학습시키는 한 편,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제시하고 평가를 받음으로써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창의적인 인간과 효율적인 인공지능이 결합하여 공동으로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의 문제 해결법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비록 현재는 예술적 창작에 집중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이러한 인간-기계 결합에 기반한 'Assisted Creativity' 기술이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준으로 발달한다면 전사회적으로 끼치게 될 영향 또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창의성 발현을 통한 최고 단계의 욕구 해결로 인구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면 높은 스트레스 수준으로 인해 벌어지는 불필요하고 비본질적인 사회적인 갈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다양한 사회적, 지구적 문제에 대해 역사적으로 인간이 도출해냈던 해결책 등을 데이터로 표현하여 기계에 학습 시킴으로써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때 도움이 되게 함으로써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빠르고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인공지능 시스템이란 아직 개념이 생소한 만큼 그것이 실현되기 위하여서는 사회학와 인문학에 대한 전문가들의 깊은 관심과 참여가 매우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ety)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박주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근래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의 키워드는 단연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귀가 솔깃하게 하고 싶을 때는 인공지능이라고도 하는데, 인공지능이란 컴퓨터로 하여금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갖게 하는 기술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고 기계학습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데이터화하고 기계에게 입력하여 누군가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던질 때 기계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이것이라고 하였다"는 식의 대답을 하게 만드는 하위 기술을 뜻한다. 즉, 기계로 하여금 사람을 학습하게 한다는 뜻에서 기계학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러한 기계가 "지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기계에서 나오는 답이 흡사 사람이 준 것 같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사람이 만들어놓은 대답에 기반한 대답이므로 이렇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다가 기계학습에 현재 제일 많이 사용되는 "심화학습"(deep learning) 알고리즘은 인간의 신경망을 본딴 수학적 구조에 기반돼있으니 지금 말하는 인공지능이 곧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능으로 발전한다고 상상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여겨지는 상황이다.
지능은 개인이 가진 능력이나 조건 가운데 일반적으로 제일 으뜸으로 여겨지는 것이고, 실제로도 개인의 성공과 지능의 상관관계가 높은 현실에서(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인 거친 스포츠인 미식축구 프로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선수들의 연봉과 상관계수가 제일 높았던 변수는 키, 몸무게, 달리기 등 신체적인 조건이 아닌 대입 수능 점수였다고 한다) 인간의 지능을 기계가 넘보고 있다는 상상은 누군가에겐 인간의 설자리가 위협받는 어두운 미래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을 때는 그 이후의 것을 상상하며 또다른 질문을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기에(물론, 언젠가 사람처럼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기계가 등장한다면 그 때는 또다시 기계와 사람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두려움이 생길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에게 어떠한 본질적인 변화가 생길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인공지능이 아직 갖지 못하였지만 인간은 갖고 잇는, 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따지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그것은 바로 "창의성"이다. 학습된 기계가 아무리 빠른 속력으로 답을 준다고 하여도 결국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데이터로부터 계산하여 찾아내는 것이기에 우리가 사람에게 기대하는 창의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창의성의 문제는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 계산하는 기계라는 개념이 등장하던 컴퓨터 초기 시대부터 제기되었다. 컴퓨터란 단순 계산을 빠르게 하는 목적으로 개발되는 것이었기에 모든 측면에서 당장 사람을 능가하거나 대체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무리였었겠지만 컴퓨터가 어디까지 사람과 비슷해질까 하는 상상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1950년대에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클로드 섀년(Claude E. Shannon)과 대화한 뒤에 “섀년은, 언제가 우리가 컴퓨터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라며 단순 계산보다 여러 발 더 나아간 창의성의 영역을 생각하고 있던 섀년에 대해 "과도한 공상을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일화가 있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 창의성이란, 초당 몇 회의 연산을 할 수 있는지로 측정할 수 있는 단순계산력과 달리 측정하기도, 평가하기도 어려운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생각되어왔기에 1990년대 이후에도 몇 명의 비주류 학자들을 제외하고서는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본격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지금도 사람이 만들어낸 음악이나 회화를 데이터화한 뒤 컴퓨터에게 학습시켜 여러 스타일을 합성한 듯한 그림을 만들거나 비슷한 음악을 접붙이는 기술적 응용을 제외하고서는 인공지능과 창의성의 결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최고수준의 인공지능 기술인 기계학습이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 창의성의 결과물을 데이터로 필요로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창의성이란 무엇이며, 인공지능과 인간의 창의성은 어떠한 관계이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논할 적절한 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창의성에 대한 학술적 연구 가운데 현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20세기 중반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가 주창한 인간 욕구 단계론이다. 그는 인간의 욕구는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있다고 하였다.
1. 음식, 온기, 휴식을 통한 생리적 욕망 (physiological needs: food, water, warmth, rest)
2. 안전의 욕구 (safety needs: security, safety)
3. 친밀감과 우정을 통한 소속감와 사랑의 욕구 (belongingness and love needs: intimate relationships, friends)
4. 지위와 성취감을 통한 자존감의 욕구 (esteem needs: prestige and feeling of accomplishment)
4. 창의성 발휘를 통한 자아실현의 욕구 (achieving one’s full potential, including creative activities)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현대사회의 역사를 통해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욕구를 순서대로 해결하게끔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19세기에 시작된 산업화가 가져온 물질적 풍요는 1, 2 단계의 욕구를 충족시켰고, 20세기의 통신혁명은 3, 4 단계의 소통과 인정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렇다면, 창의성 발휘를 통한 최고단위의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잇을까?
창의성 발휘를 통한 자아실현과 인공지능을 연결짓는 단서를 찾기 위하여서 20세기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보옴(David Bohm)이 내린 창의성의 정의를 생각해볼 수 있다. 보옴은 창의성을 "겉보기로는 다른 객체들 사이의 공통점을 인지하여 고차원적인 질서를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렇게 찾아진 고차원적인 질서는 세상의 복잡한 양상들을 뚫어내고 지금까지 아무도 만들어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원리가 되는데,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베토벤의 9번 교향곡 같은 인류 예술의 정수들이 바로 이렇게 감각을 통해 전달된 자극들로부터 찾아낸 고차원적인 질서를 빛깔과 소리로써 표현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 아래 세상은 조화로와지며, 개인은 자신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의성의 문제에서 인공지능의 현주소는? 먼저,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그림이나 음악이 소수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고 극장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에 비하면 질과 다양성에서 비견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돌려서 인간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 발휘를 돕는 도구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인간에게는 창의성 발위를 위한 전례 없는 높은 수준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것들은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속력으로 찾고 흉내내는 기계 학습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기계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찾아내고 전달하는 데 매우 능숙하기 때문에 정형화되어 뻔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은 기계에게 맡기고 기계가 아직 사람을 따라하지 못하는 진정한 창의적인 과정에만 인간이 집중한다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창의적인 결과물들을 빨리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쉬운 이해를 위하여 현재 필자가 재직중인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머릿속에 멜로디가 떠올랐을 때 인공지능이 데이터로부터 어울리는 것을 찾아 작곡과 편곡을 완성시켜준다든지, 기본 스케치를 입력하기만 하면 인공지능이 그에 어울리도록 색칠을 해주게 하는 등, 창의성 발현을 위한 장벽을 제거해줌으로써 사라질뻔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세상의 빛을 보도록 해주는 문화 예술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것을 다시 기계에 학습시키는 한 편,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제시하고 평가를 받음으로써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창의적인 인간과 효율적인 인공지능이 결합하여 공동으로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의 문제 해결법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비록 현재는 예술적 창작에 집중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이러한 인간-기계 결합에 기반한 'Assisted Creativity' 기술이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준으로 발달한다면 전사회적으로 끼치게 될 영향 또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창의성 발현을 통한 최고 단계의 욕구 해결로 인구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면 높은 스트레스 수준으로 인해 벌어지는 불필요하고 비본질적인 사회적인 갈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다양한 사회적, 지구적 문제에 대해 역사적으로 인간이 도출해냈던 해결책 등을 데이터로 표현하여 기계에 학습 시킴으로써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때 도움이 되게 함으로써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빠르고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인공지능 시스템이란 아직 개념이 생소한 만큼 그것이 실현되기 위하여서는 사회학와 인문학에 대한 전문가들의 깊은 관심과 참여가 매우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ety)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디지털사회] 제19호
발행인: 조화순
발행일: 2019년 4월 15일
ISSN 2586-3525(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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