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Brief

디지털사회 제55호: 한국 국회의원의 정당 충성 행태에 대한 재조명: 동기와 결과

작성자
ssk
작성일
2025-01-24 18:04
조회
185

한국 국회의원의 정당 충성 행태에 대한 재조명: 동기와 결과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 박사후연구원

강 신 재

들어가며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흔히 지적하는 모순적인 현상이 하나 있다. 정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데도, 정작 국회 내에서는 의원들이 당론에 충실히 따르며 높은 정당응집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정당이 수시로 분당과 통합을 반복하고 당명을 바꾸는 상황에서도, 정작 본회의 표결에서는 의원들이 거의 정당의 입장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투표한다. 이런 모순적 현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은 정당에 왜 충성하는 것일까? 정치과정을 연구하는 연구자, 기자, 일반 사람들도 익히 짐작하고 있듯이 ‘공천’을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사회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검증된 적이 없었다. 본 글의 저자인 강신재(2023a)의 박사학위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제17대 국회부터 제20대 국회까지 국회의원의 정당충성도를 본회의 표결기록을 통해 측정하여, 정당충성도의 결정요인(강신재 2024c), 재선에 유리한 상임위원회 배정(강신재 2024b), 상임위원회 지도부 선출(강신재 2023b), 공천 결정(강신재 2023c), 선거 결과(강신재 2024a)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충성'의 실체: 정당충성도의 측정과 현황

의원들의 정당충성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서구 의회에서는 본회의 표결기록을 통해 의원들의 이념과 정당 충성도를 측정해오고 있다. 한국 국회의 본회의 표결 기록을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난다. 아래 표를 통해 제17대부터 제20대 국회까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의원들은 단 5% 정도의 경우에만 당론과 다른 투표를 했다. 특히 여당 소속 의원들의 경우 당론이탈 투표율이 2~3%에 불과해, 6~7% 수준을 보인 야당 의원들보다 훨씬 더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의원들에게 높은 정당충성도가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개별 의원이 지닌 이념 성향이 소속 정당의 이념과 멀수록 당론에서 이탈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강신재 2024c). 이와 함께 한국 정당 지도부가 가진 강력한 공천권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평소 당론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여기에 상임위원장직이나 국무위원 자리와 같은 매력적인 자리들이 정당의 통제 하에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당론을 거스를 경우 이러한 자리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의원들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정당 충성의 정치적 결과

그렇다면 이러한 충성은 실제로 보상받는 것일까?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이러한 높은 정당충성도가 실제로 의원들의 정치적 경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먼저 상임위원회 지도부 선출 과정을 살펴보면, 국회 전반기에 당론에 충실했던 의원들은 후반기에 상임위원회 지도부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강신재 2023b). 또한, 국회 전반기에 당론에 충실했던 의원들은 후반기에 국토교통위원회 같은 재선에 유리한 상임위원회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았다(강신재 2024b).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야당에서 이러한 효과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여당의 경우 행정부 고위직과 같은 다른 보상수단이 있는 반면, 야당의 경우 국회 내 직책이 거의 유일한 보상수단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공천 결과와 선거 결과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발견된다. 정당충성도가 높은 의원일수록 소속 정당에서 재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는데, 이러한 효과는 특히 민주당 계열의 정당에서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었다(강신재 2023c). 또한, 공천을 받은 의원들을 대상으로 정당충성도와 선거 결과 간의 관계를 분석해보았을 때 정당충성도가 낮은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재선에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위 그림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특히 이러한 효과는 영남과 호남처럼 지역주의가 강한 곳에서 더욱 뚜렷했다(강신재 2024a). 이는 지역주의가 강한 지역의 유권자들은 현직 의원들에게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충성을 요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권자 간 정서적 양극화와 연결될 수 있으며, 적어도 선거정치 측면에서는 지역주의가 정당충성도와 결합되어 전통적인 영남과 호남의 지역구도가 지속될 수 있음을 예측한다.

충성의 새로운 의미: 전략적 선택으로서의 정당충성도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높은 정당충성도는 주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졌다. 의원들의 자율성을 해치고 다양한 민의 수렴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이러한 시각이 재고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우선 정당충성도는 단순히 정당의 강요나 의원의 나약함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정당과 의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적 상호작용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정당은 충성스러운 의원들에게 공천과 요직을 보장함으로써 안정적인 정책 추진의 기반을 마련한다. 의원들 역시 정당에 대한 충성을 통해 정치적 경력을 관리하고 재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서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정당충성도는 유권자들의 선호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지역주의가 강한 곳에서는 정당에 대한 충성이 오히려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 충성과 자율성 사이에서

물론 이러한 해석이 현재의 상황이 이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지나치게 높은 정당충성도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특히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소수의 지도부에 의한 독단적 결정이 의원들을 통해 그대로 관철될 위험이 있다. 또한 지역주의와 결합된 정당충성도는 정치적·정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미 한국 정치는 심각한 수준의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여기에 높은 정당충성도가 더해지면 합리적 토론과 타협의 여지는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양극화 현상은 높은 정당충성도와 맞물려 우려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의원들의 정당충성도가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한국은 이미 높은 정당충성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어, 그 부작용이 더욱 클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상임위원회의 전문성을 제고하며, 의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상향식 공천제도의 확대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강신재. 2023a. 한국 국회의원의 정당 충성의 원인과 정치적 결과. 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 문.

강신재. 2023b. "어떤 의원들이 상임위원회 지도부로 선출되는가?: 제20대 국회 후반기에 대 한 경험적 분석." 『한국정치연구』 32(3), pp. 185-216.

강신재. 2023c. “21대 총선에서 주요 양당의 공천 결정에 대한 경험적 분석: 정당 충성도, 이 념, 제도적 요인.” 『선거연구』 19, pp. 5-30.

강신재. 2024a. “한국 국회의원의 정당 충성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 제18대~제21대 총 선을 중심으로.” 『한국정당학회보』 23(1), pp. 5-37.

강신재. 2024b. “어떤 의원들이 재선에 유리한 상임위원회에 배정되는가? 정당 충성도, 상임 위원회 배정 경험, 선거 안정도를 중심으로.” 『연구방법논총』 9(1), pp. 75-107.

강신재. 2024c. “한국 국회의원의 정당충성도 측정과 결정요인 분석: 제17대~20대 국회를 중 심으로.” 『한국정당학회보』 23(4), pp. 35-76.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al Science)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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