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Brief

디지털사회 제53호: 민주주의 소시지(Democracy Sausage)와 시민참여

작성자
ssk
작성일
2024-11-30 01:20
조회
20

민주주의 소시지(Democracy Sausage)와 시민참여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 연구원

한 은 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가별 삶의 질을 평가하는 Better Life Index(BLI)를 발표한다. BLI를 평가하는 다양한 기준 가운데 시민참여(civic-engagement)지수를 보면 호주는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2017년에는 시민참여지수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8.9를 기록하며 OECD 국가 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덴마크나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호주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호주의 시민참여 지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꼽아볼 수 있다.

첫째, 제도적 차원에서 보면 그 이유는 호주의 선거제도에 있다. 호주는 전 세계에서 첫 번째로 의무투표제(compulsory voting system)를 시행한 국가이다. 호주의 연방 총선은 3년 주기로 치러지는데 호주선거관리위원회(AES, Australian Electoral Commission)에 따르면 연방 선거법 제245조에 따라 호주 유권자는 합당한 사유 없이 투표에 불참할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이러한 호주의 의무투표제도로 호주는 대부분의 선거에서 90% 이상의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22년 대선 투표율이 77.1%, 2024년 4월에 있었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최종 투표율이 67%였고 미국의 경우 2020년과 2024년 대선에서 각각 66.4%, 64.5%의 투표율을 보였다. 이와 비교했을 때 호주의 의무투표제가 투표율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호주의 의무투표제를 두고 일부는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 자체도 민주적 선택의 방식이기 때문에 투표의 강제성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호주의 국민 대다수는 이를 정치참여의 기회로 여겨 강제성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더해 투표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시민들의 투표참여를 장려하는데 큰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호주의 선거는 통상 토요일에 실시되며 투표소마다 다양한 단체들이 나와 커피와 먹거리를 제공하는데,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민주주의 소시지’라고 불리는 호주식 핫도그이다. 투표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표일이 호주 국민들에게 있어서 나들이의 개념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투표 후 도장을 손등에 찍어 SNS에 인증하는 문화가 있다면 호주에서는 이 민주주의 소시지에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인증샷을 남기는 문화가 있다.

<그림 1> 호주의 민주주의 소시지

출처: CNN “In Australia, sausages have become a symbol of election day”

둘째, 호주의 시민참여율을 높이는 또 다른 이유는 호주 내에서 운영되는 온라인 플랫폼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호주에는 평소에는 물론이고 선거기간동안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온라인 시민참여 플랫폼이 있다. 호주의 겟업(GetUp!)은 온라인 시민참여 플랫폼으로써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환경, 인권, 사회 정의와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호주 내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시민참여 단체로 평가받고 있다(Rodan and Balnaves 2010). 실제로 호주 내에서 선거철만 되면 정당들이 가장 견제하는 단체로 겟업이 꼽히기도 했다.

겟업은 2005년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였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일반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고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출범했다. 상향식 의사결정 방식을 원칙으로 하고 이들의 활동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 캠페인은 참여 시민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서 결정된다(Vromen and Coleman 2013).

<그림 2> 겟업 환경운동 캠페인

출처: 겟업 홈페이지(getup.org.au)

이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도모하는데 활용하는 온라인 플랫폼들은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있는데, 공식 웹사이트(www.getup.org.au)를 통해 캠페인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온라인 기부를 관리하며 실시간 캠페인 현황을 보고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네이션빌더(Nationbuilder)라는 플랫폼을 통해 참여한 시민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이러한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온라인 내 토론이나 캠페인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 변화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겟업은 호주 정부의 기후 변화 대응 정책에 대해 재생 에너지의 확대와 탄소 배출 감소를 촉진하는 정책을 지지하며 캠페인을 벌였고 호주의 기후 변화 전략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겟업에서 시작한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캠페인을 통해 2017년 호주에서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이끌어냈으며 여러 인권 단체들과 협력하여 난민 및 망명 신청자 처리 방식에 있어서 인도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하도록 하는 정책 개선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이들의 캠페인 이후 호주의 인종 차별법과 시민권법이 개정되기도 하였다.

특정 정당과의 정치적 연계성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들은 조직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중요한 가치로 판단한다. 유럽의 사례에서 종종 호주의 겟업과 유사한 형태로 시작한 시민단체들이 정당 창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겟업의 사례에서는 특정 정당이나 이익단체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의 목적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겟업 내에서 활동하는 호주 시민들이 겟업 플랫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이유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시민주도로 운영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Penelope 2024).

이처럼 호주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선거 관련 교육뿐만 아니라 선거권과 선거의무, 직접적인 정치참여의 중요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겟업을 포함한 다양한 정치참여 온라인 플랫폼들이 운영되고 있다.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처리하여 분석하는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뿐만 아니라 시민참여에 있어서 역시 기존의 전통적 방식의 한계를 넘어 물리적, 시간적 제한 없는 새로운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볼 때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는 그 범위와 규모에 비해서 이에 따라오는 책임성과 투명성이 얼마나 확보되었는지는 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단순한 기술적 차원에서의 활용을 넘어 디지털 기술 활용의 의미와 가치가 실현되는 사례가 늘어나길 바란다.

<참고문헌>

Penelope Bowyer-Pont. 2024. GETUP!. Understanding Australia’s largest internet-mediated political campaigning and advocacy organisation. Doctoral dissertation, Macquarie University, School of Social Sciences.

Peter John Chen. 2014. “New media electioneering in the 2013 Australian federal election” Global Media Journal. Australian Edition. 8(2).

Rodan Debbie and Balnaves Mark. 2009. “Democracy to Come: Active Forums as Indicator Suites for e-Participation and e-Governance” Electronic Participation. Springer. pp.175-185.

Rodan Debbie and Balnaves Mark. 2010. “Media activist websites: the nature of e-participation spaces” Australian Jounalism Review. 32(1). pp.27-39.

Stokes Freg. 2019. “2011 and World Revolutionary Moments: Mapping New Strategies and Alliances in Australian Youth Activism” Young People and the Politics of Outrage and Hope. Brill. pp.307-326.

Vromen Ariadne. 2016. “GetUp! in Election 2016”. Double Disillusion: The 2016 Australian Federal Election.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Press. pp.397-419.

https://www.getup.org.au/

https://www.sbs.com.au/news/article/what-is-getup-and-will-it-sway-australias-federal-election/wxhqyqou6

https://www.ourcommunity.com.au/general/general_article.jsp?articleId=7364

https://action.getup.org.au/

https://www.facebook.com/GetUpAustralia/

https://www.theguardian.com/australia-news/2019/may/26/hindsight-is-a-wonderful-thing-how-getups-election-campaign-fell-flat

https://www.ceda.com.au/newsandresources/opinion/government-regulation/digital-campaigning-and-the-getup-effect-in-electi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al Science)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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