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Brief

디지털사회 제49호: 미디어로 읽는 한국의 인종주의

작성자
ssk
작성일
2023-12-10 14:57
조회
441

미디어로 읽는 한국의 인종주의

정회옥(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근대 매체에서 시작된 한국의 인종주의

 

대개 구라파 사람들은 가죽이 희고 털이 명주실같이 곱고 얼굴이 분명하게 생겼으며, 코가 바르고 눈이 크고 확실하게 박혔으며, 동양인은 가죽이 누르고 털이 검고 뻣뻣하며, 눈이 기울어지게 박혔으며 이가 밖으로 두드러지게 났으며, 흑인들은 가죽이 검으며 털이 양의 털같이 곱슬곱슬하며, 턱이 튀어나왔으며 코가 넓적한 고로 동양인보다도 미련하고 흰 인종보다는 매우 천한지라. 미국에 토종은 얼굴빛이 붉으며 생긴 것이 동양인과 비슷하나 더 크고 개화된 것이 동양인만도 못한지라. …… 백인은 오늘날 세계 인종 중에 제일 영민하고 부지런하고 담대한 고로, 온 천하 각국에 모두 퍼져 차차 하등 인종들을 이기고 토지와 초목을 차지하는 고로, 하등 인종 중에 백인과 섞여 백인의 학문과 풍속을 배워 그 사람들과 같이 문명 진보 못 하는 종자들은 차차 멸종이 되어…….”

 

위 글은 《독립신문》 1897년 6월 24일자 기사이다. 이 사설에서 백인의 외모는 ‘바르고’, ‘확실하게’ 같은 긍정적인 표현으로 묘사되지만, 동양인의 외모는 ‘기울어지게’, ‘밖으로 두드러지게’ 같은 부정적인 표현으로 묘사된다. 더 나아가 백인이 세계 인종 중에 제일 영민하고 부지런해 하등 인종들을 이긴다고 칭송한다. 특히 흑인을 인종 위계의 맨 밑바닥에 놓는다. 오늘날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반흑인성을 약 130여 년 전 조선을 대표한 근대적 매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약 1세기 전 우리나라에 들어온 위계적 인종 개념은 현재도 우리의 의식 체계에 굳건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인종주의가 자리 잡는 데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미디어를 통해서 전파된 백인의 편견은 한국인의 편견으로 자리 잡게 되고, 혼혈인, 재중동포, 무슬림,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여러 집단들이 차별의 대상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개화기 때 독립신문이 ‘미국 인종주의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면, 일제 식민시대에도 매체의 인종주의적 편견은 계속된다.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몇몇 글은 한국인의 반흑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조선문인보국회 간부였던 주요한(朱曜翰)은 1943년 6월호 《신시대》에 실린 〈다섯 가지 사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들(미국과 영국)(동양 침략의) 야망을 달성할 때가 온다면, 고향은 제2의 아프리카대륙이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본의 패전이 불러올 비극적인 상황이란 고향이 ‘아프리카’가 된다는 것으로, 당시 한국인이 아프리카를 얼마나 후진적이고 미개한 곳으로 보았는지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친일파 정치인이었던 이원영(李元榮)은 1942년 3월 호 《동양지광(東洋之光)》에 실린 〈전국(戰局)의 긴박과 청년에게 요망〉에서 일본이 패전하면 동양 민족들은 흑인과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흑인처럼 농담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되거나, 심지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금고에 갇힌 채 폭살당하거나, 살아 있는 채로 자동차 뒤에 묶여 질질 끌려다니다가 죽임당하는 경악스러운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면 조선인도 흑인처럼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동시에, 열등한 흑인이 처한 비인간적이고 비참한 상황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반흑인적 인식을 보여준다.

 

 

순수한 피를 강조하는 언론 보도

 

개화기와 식민시대를 거쳐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인종주의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깊게 한국인의 인식 속에 자리를 잡아간다. 그 과정에 미디어는 조력자의 역할을 했는데, 혼혈인에 대한 미디어의 다음과 같은 보도는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군이 진주하야 조선 여자와의 사이에 부정 교접으로 인한 혼혈아는 유전학상으로 보아서 결코 우수한 형질을 타고났으리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이다.”

_우생학적 견지에서 본 혼혈아와 유전, 조선일보, 1946121.

무질서한 자유와 남녀평등권이 빚어낸 동양 부도의 탈선이 여자경찰서에서 집계된 기아 통계로 능히 추측될 수 있다.…… 기아 통계를 보면 도합 10건 중 8건이 혼혈아 사건이라는 것이다.”

_노랑머리·검둥이 혼혈아의 범람, 부도의가 빚어낸 사회의 일면, 동아일보, 1947827.

우리의 혈통 속에 조금이라도 혼혈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대주의다. 화평 통일을 부르짖기 전에 우리 핏속에 잠복하여 있는 불순한 혼혈을 뽑아내자.”

_세 가지 화평설和平說, 먼저 를 찾자, 경향신문, 1949212.

 

우리나라에서 인종주의는 한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강조하는 순혈주의와 같이 융합되어 확산되었는데, 순혈주의 신화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바로 ‘혼혈인들’이었다. 혼혈인은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 피가 섞였다는 이유 때문에, 유전적으로 열등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법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은 곧 혼혈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여러 매체에서 혼혈인을 해외로 입양 보내는 일은 최선의 대책이자, 그들에게도 매우 기쁜 소식으로 포장되었다. 1950년부터 2011년까지 입양 간 아동의 소식을 다룬 신문 기사 1123건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잘 적응하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경쟁적으로 보도된 다음 기사들의 제목에서 이러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전쟁고아들에게 기쁜 소식. 손쉽게 입국하도록, 동아일보, 1956112.

양연 맺고 도미한 우리 혼혈고아 소식. 새 이름 얻고 행복한 생활, 동아일보, 1957311.

천시와 고독 속의 한국 혼혈아에게 밝은 내일을 열어주자, 경향신문, 196551.

 

정작 한국 사회는 혼혈인에게 ‘밝은 내일’을 열어주지 않으면서, 해외에 입양 보내는 것을 마치 시혜를 베푸는 일처럼 묘사하는 이중성이 엿보인다. 해외 입양은 혼혈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저들을 우리나라에서 추방함으로써, ‘우리’의 동질성을 보존하고자한 지극히 차별적인 선택이었다.

 

 

현재에도 계속되는 인종주의적 미디어 행태

 

미디어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강화되어 온 순혈주의와 인종주의는 현재에도 우리 곁에 생생히 살아 있다. 얼마 전에도 밝은 피부는 우월하고 우수하며 가장 진화된 형태라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2021년 2월 KBS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호모 미디어쿠스〉의 포스터에 인류의 진화를 단계별로 묘사한 그림이 사용되었다. 문제는 인류가 진화할수록 피부색이 점점 밝아지도록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피부색이 밝을수록 진화한 인간이라는 인종적 편견과 흰 피부를 선호하는 한국적 사고가 그대로 드러났다. 포스터를 공개하기 전까지 몇 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쳤을 텐데, 누구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둔감성을 시사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방송법 제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제2항은 “방송은 성별, 연령, 직업, 종교, 신념, 계층, 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방송 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인종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기준 등을 제시하는 지침은 없다.

반흑인성의 내재화를 잘 보여주는 기사는 차고 넘친다. 2020년 12월 27일 자 《경향신문》은 아프리카의 심각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기사로 내보냈는데, 제목이 〈검은 대륙의 코로나, 더 암울하다〉였다. 만약 서구 언론 매체가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보도하면서 ‘황색’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인종차별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아프리카를 향해 ‘검은 대륙’이라는 제국주의적 표현을 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한다.

연장선에서 조선족이라는 사실이 범죄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조선족이 연루된 범죄라면 기사 제목에 꼭 ‘조선족’이라는 집단명이 들어간다.

 

20대 취준생 죽게 만든 가짜 김민수 검사잡고 보니 조선족이었다, 인사이트, 2020514.

하정우×주진모 협박범, 조선족 자매 부부 모든 혐의 인정”··주범은 도피, 스포츠조선, 2020522.

해경 “8명이 태안으로 밀입국 진술 확보조력자는 불법 체류 중국인, 조선비즈, 2020528.

 

이들 기사는 개인이 속한 집단은 그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아닌데도, 특정 국적과 인종을 제목에 밝히고 있다. 이러한 유의 기사에 계속해서 노출된 사람은 개인이 속한 집단이 범죄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착각하게 될 테다.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에 대한 미디어의 태도 역시 비슷하다. 2020년 4월 21일 자 《중앙일보》는 〈광주서 외국인들 대낮 칼부림…여자문제로 두 나라가 붙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이주노동자 간에 벌어진 싸움을 다룬 이 기사는 선혈을 떠올리게 하는 빨간 바탕에 칼을 그려 넣은 삽화를 함께 실었다. 2018년 고양시 저유소 화재 사건을 다룬 수많은 기사가 용의자가 외국인임을 그리고 그의 국적을 앞다퉈 공개했던 것도 우리나라 미디어의 인종주의적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경찰, “고양 저유소 화재 관련 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긴급체포”〉, 《연합뉴스》, 2018년 10월 8일.

〈“풍등 날리다 화재”…고양 저유소 실화 혐의 스리랑카인 체포〉, 《한겨레신문》, 2018년 10월 8일.

〈‘고양 저유소 화재’ 풍등 날린 외국인 벌금 1000만 원 선고〉, 《동아일보》, 2020년 12월 23일.

 

2000년대 들어 ‘다문화’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는데, 이는 2003년 3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건강가정시민연대가 ‘혼혈아’, ‘국제결혼’ 같은 차별적 용어 대신 권장한 것으로, 이후 널리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혼혈’이라는 용어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각종 기사에, 그것도 제목에서 빈번히 등장한다.

 

다민족 코리아신생아 20명 중 1명꼴 혼혈, 세계일보, 2014730.

백인 혼혈은 예능, 동남아 혼혈은 다큐차별에 멍드는 다문화 2, 매일경제, 202154.

선빵날린 혼혈 국가 대표 역사 잘 알기에, 이기고 싶었다, 한국일보, 2021728.

 

혼혈인을 칭하는 인종차별적이지 않은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는데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다문화’라는 용어가 ‘인종’, 또는 ‘인종차별’이라는 용어를 대체해 사용되는 경향때문에 관련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게 막는 폐해마저 발생했다.

미국 대중문화와 가치관의 압도적인 지배하에 수십 년을 보낸 우리나라는 무슬림에 대한 태도도 미국의 인종주의적 시선을 그대로 투영한다. 우리나라의 언론 매체는 반무슬림 정서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데, 무슬림에 대한 기사는 테러 및 명예 살인, 일부다처제, 여성 할례처럼 여성을 억압하는 행태와 관련된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데 반해, 수준 높은 예술과 문화 등을 다룬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9년 ‘붉은 수돗물’ 현상이 발생해 시민 불안이 고조되었다. 그러자 2019년 6월 21일 자 《시사뉴스》는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 “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 수도”〉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시한 근거가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가, 심지어 해당 기사에서 공공기관 담당자가 무슬림의 소행을 일축했다고 밝히면서도 저렇게 제목을 단 것은 매우 악의적인 인종차별 행위다. 2018년 6월 29일 자 《투데이코리아》는 〈예멘 난민 중 ‘韓 적대시’ 무장반군 포함됐나〉라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고 추측만 가득했다. 2018년 8월 25일자 《중앙SUNDAY》는 〈제주 ‘예멘 난민’ 페북엔 총 든 사진도 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은 그 자체가 능동적인 담론 생산자다’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미디어의 보도 태도는 흑인, 재중동포, 다문화인,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무슬림 등에게 열등함, 불결함, 위험 등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결국 대중의 의식 깊은 곳에 인종주의적 정서를 새긴다. 아무리 인종적 소수자들을 중립적인 태도로 대하려고 해도, 계속해서 부정적인 미디어에 노출된다면 편견을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인종주의라는 ‘외래 담론의 전유와 토착화’ 과정은 1876년 이후 현재까지 약 150년간 지속되고 있는 한국인의 인종 콤플렉스가 진화해온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국식 인종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화되어 있다. 우리는 인종, 또는 인종주의라는 주제를 회피하고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인종주의에 대해서 정치권이나 시민사회가 진지한 숙의를 해본 경험도 적다. 또 하나 한국식 인종주의의 특징은 인종주의를 서구의 역사 속 유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다. 우리나라의 타자화된 집단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적 차별을 겪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 인종차별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 없는 우리나라’라는 ‘순수한’ 믿음은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가 비가시화되어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꽁꽁 감춰놓은 상처는 겉에선 잘 보이지 않아 다 나은 것 같지만, 속에서는 덧난 채 고름으로 가득하다. 한국식 인종주의는 바로 이렇게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미디어는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이 글은 <한 번은 불러보았다: 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정회옥 저, 2022, 위즈덤하우스)를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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