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 제46호: 현실을 조직화하는 소셜미디어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다차원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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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k
작성일
2023-03-0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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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조직화하는 소셜미디어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다차원적 대응
김주용(언론중재위원회 감사관, 언론학박사)
들어가며매클루언은 명저 『미디어의 이해』에서 “모든 미디어는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제조건을 주입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McLuhan, 1964/2011). 이때 전제조건이라 함은 어떤 한 방향을 선호하는 경향, 즉 미디어와 기술이 지닌 편향적 구조나 성격을 뜻한다(김상호, 2009). 말하자면 모든 기술과 미디어는 구조적 편향성 내지 지향성을 갖는데 이것이 미디어의 메시지를 형성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기술의 총아로 불리는 인터넷미디어, 그중에서도 미디어생태계의 가장 큰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매체인 소셜미디어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참여적인 시장 내지 표현 촉진적 매체”로 칭송받던 인터넷, 그 인터넷에 기반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오늘날 허위조작정보와 혐오표현의 가장 유력한 진원지로 지목받고 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어떤 구조적 편향성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을까? 이 글은 소셜미디어의 기술적 특성이 허위조작정보나 혐오표현의 유통과 소비과정에 초래한 영향을 살펴보고 이에 기초해 현안으로 떠오른 역정보(disinformation)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소셜미디어의 기술적 특성과 현실의 조직화
네트워크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던 『링크』의 저자 바라바시는 수많은 노드와 링크로 이루어진 월드와이드웹이 단일의 균질적인 바다가 아니라 중심핵과 대륙들, 그리고 덩굴과 섬과 같은 위상을 가진 방향성 네트워크이고, 이러한 웹의 위상구조가 온라인 세계에서의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고 결정한다고 지적했다(Barabási, 2002/2002). 비슷한 맥락에서 지인 관계 네트워크에 기초하고 있는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정보이용환경을 ‘규정’하고 관계맺음을 ‘제한’하며, 이로써 우리의 현실을 ‘조직화’하고 세계를 ‘구축’한다.
메싱과 웨스트우드의 연구에 의하면, 소셜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이용할 때는 생산 주체의 신뢰도나 전문성 등 정보원 단서(source cues)보다 해당 뉴스를 공유한 사람이나 관계(social cues)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동할 수 있다(Messing & Westwood, 2014). 이러한 정보이용환경은 ‘사이버 집단동조’를 일으켜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비판적 추론 의지를 약화시키는 상황을 조성하기 쉽다. 이는 지인 간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는 소셜미디어의 물리적 구조가 이용자들을 집단 규범이나 행동에 동조하게끔 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지각체계에도 변화를 만들어낸다. 데이터분야 과학자 시난 아랄은 소셜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생태계를 ‘하이프 머신’(hype machine)이라고 명명하였다. 좋아요, 공유, 추천, 평가 등을 통해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사회적 신호들은 신경생리학적 반응을 촉발함으로써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며 ‘초사회화’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Aral, 2020/2022). 우리가 하이프 머신에 의한 초사회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디지털 네트워크로 초연결된 사회에서의 초사회화 과정이 소셜미디어 상에서의 노드들을 점차 다양성과 독립성을 잃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변형시키고 이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아닌 ‘집단광기’(Collective Madness)로 나아가기 쉬운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의 기술적 특성의 영향력과 관련하여 주목을 요하는 또 다른 측면은 허위조작정보가 소셜미디어와 결합할 때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뒤섞임(mix)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Gelfert, 2018). 이는 소셜미디어가 반복효과(repetition effect)나 점화(priming), 감정자극(affective arousal), 우물에 독 뿌리기(poisoning the well fallacy)와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스테로이드처럼 꾸준히 인지적 편견을 조장하거나 인간의 휴리스틱(heuristic)에 맞춤형 ‘조작’을 가하기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특정한 사실을 연상시키는(priming), 감정의 바닥을 뒤흔드는 자극적 정보가, ‘방향성 동기’가 상대적으로 약한 집단에 반복적으로 제시된다면 이 소집단에 속하는 자들의 지각체계가 교란상태에 놓이기 쉽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셜미디어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앞서 살펴본, 소셜미디어가 초래한 영향은 이 미디어의 기술적 특성에서 유래하는 본질적인 기능에 따른 것이므로 이를 완전히 차폐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본질적 기능을 완화시키거나, 플랫폼사업자나 이용자가 이를 적극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억제시키는 것뿐이다.
물론 지금도 플랫폼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제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나 사업자 자신에 의한 과잉규제 내지 규제남용을 우려해야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 미국 대선 직후 일어난 ‘의회난입 사건’이나 코로나 사태 초기 횡행했던 ‘백신 음모론’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소셜미디어를 통한 허위조작정보나 혐오표현의 파급력과 파괴력은 이 사안이 규제 찬반의 문제를 이미 넘어서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관건은 어떻게 해야 공론장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허위조작정보나 혐오표현과 같은 바이러스의 활동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또 어떤 방법으로 사회 전체의 면역력을 높여 공론장이 이 바이러스에 대항하도록 도울 것인지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언급한 시난 아랄의 분석은 참고할만하다. 그는 하이프 머신은 디지털 네트워크와 인공지능, 그리고 스마트폰(미디어)의 3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이프 머신의 발전을 이끄는 경제적·기술적·사회적·법적 힘, 즉 돈과 코드, 규범과 법에 대해 잘 알아야 소셜미디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Aral, 2020/2022). 시난 아랄의 이러한 접근법은 소셜미디어에 대한 대응방법론이 하이프 머신의 여러 요소와 힘들의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네트워크, 돈, 법, 그리고 이용자들의 ‘선한 영향력’
먼저 네트워크의 측면이다. 유튜브 상의 허위정보 생태계 네트워크에 대한 분석결과, 분석대상 동영상 모두에서 하나의 액터가 나머지 액터들보다 우월한 중심적 위치를 점하는 ‘스타형’ 의사소통구조가 드러났으며, 네트워크 안에서 확성기 역할을 하는 허브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정정주, 김민정, 박한우, 2019). 네트워크에서 이들 허브의 허위주장이 지배적인 여론인 것처럼 득세할 때 다수는 침묵하기 쉽다. 따라서 자율규제를 담당하는 플랫폼사업자는 온라인 공간을 역정보로 도배하고 있는 허브와 그 권위자들을 특정하고, 이들의 플랫폼 이용이력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여 침묵하는 다수의 이용자들이 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상의 허브뿐만 아니라 소위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에 대한 관심도 제고되어야 한다. 아랄과 딜론의 연구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유대관계가 덜 끈끈하고 덜 중앙집중적인 사람들을 상대로 씨앗을 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그런 사람들이 친구들과의 유대관계도 더욱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Aral & Dhillon, 2018). 이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역정보 생산·유포자들의 주요 표적에 노출될 경우, 설사 허브를 차단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건재하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돈을 통해 소셜미디어에 대응하는 방법은 역정보 생산자들의 유인(誘因)인 금전적 이득을 제거하는 것이다. 돈을 통한 대응은 이 과정에서 역정보 유통의 허브역할을 담당했던 노드들에 대한 경제적 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하고 금전적 불이익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다. 지금도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이들의 수익창출을 차단하고 있지만 단순히 수익차단에서 머물러서는 한계가 있다. 자사 플랫폼을 악용한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모니터링 비용청구나 손해배상 청구와 같은 보다 적극적인 금전적 페널티 항목을 이용약관에 명시하여 이들의 역정보 생산·유포 동기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동시에 플랫폼 또한 역정보 트래픽으로 발생한 수익을 사회에 환원토록 하여 역정보 방조의 유혹을 사전에 차단하고 이로써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제고시켜야 할 것이다.
이때 소셜미디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지렛대인 법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우리의 정보이용환경이나 지각체계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플랫폼사업자의 자율적인 규제에만 모든 것을 맡겨두는 것은 위험하다. 세부 실천요강의 제정과 집행 등은 플랫폼사업자의 자율에 의하되, 이들이 지향해야 할 청사진을 제시하고 자율적 대응의 실효성을 감사·평가하며, 미흡 내지 과도할 경우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역할은 결국 정치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독립기구에 맡겨져야 한다.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2018년 EU가 채택한 ‘온라인 허위조작정보 대응에 관한 정책안: 유럽의 접근법’(Communication on tackling online disinformation: a European Approach)과 ‘허위조작정보 대응 실천강령’(Code of practice against Disinformation)의 도출과정은 우리가 참고해볼만한 사례이다.
다만 법으로써 소셜미디어를 통한 허위조작정보 대응문제를 다룰 때 이 문제를 ‘표현물 규제’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지난 정부 당시 언론중재법 개정논란에서 보듯 소모적 논쟁만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대응문제는 플랫폼 내에서의 이용자 간 공정성 혹은 다원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트위터에서는 사용자의 상위 20%가 전체 팔로워의 96% 이상, 리트윗의 93% 이상, 멘션(mention)의 9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Zhu & Lerman, 2016). 이는 소셜미디어가 관심의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불평등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임을 의미한다. 이용자 간 불평등 완화 내지 다원다양성 확보의 문제로 접근할 때 소셜미디어에 대한 법적 대응방안에 관한 논의는 보다 생산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드와, 이 코드를 이용하는 ‘인간의 집합적 행동’이 함께 작용해 얻어진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아키텍처의 측면이다. 이 영역은 대응방안 설계에 있어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Facebook의 뉴스피드 알고리즘이 사용자가 특정 게시물을 좋아할지 여부를 예측하려고 할 때 알고리즘이 고려하는 변수는 사용자의 과거 행동을 포함해 수백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Oremus, 2016). 이는 알고리즘이 우리가 노출될 콘텐츠를 선별하고 추천하지만, 우리 또한 그런 선별과 추천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digital media literacy)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이다. 미디어와 디지털기술의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대안적 실천을 통해 이용자들이 스스로 피드 알고리즘에 ‘선한 영향력을 되먹임’할 수 있다면, 매클루언이 말한 ‘기계세계의 생식기’로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세계를 수태하고 진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오며
주지하듯 소셜미디어는 인터넷에서의 표현행위를 증폭시킴으로써 정보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 이와 동시에 인간의 무의식에 갇혀있었던, ‘나와 다른 것’, ‘내 이익에 대해 잠재적 위협이 되는 것’에 대한 증오와 혐오, 그리고 거짓말의 욕망들도 함께 해방되었다. 민주정치의 핵심적 전제조건이었던 표현의 자유, 그 자유 실현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미디어였던 인터넷은 이제 ‘거짓과 혐오 정치’의 충실한 도구로 반전하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장을 위협하는 역습을 감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용돌이를 벗어나는 법은 깨어서 소용돌이를 살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기술이 우리의 지각체계를 어떻게 고쳐 쓰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가 어떻게 새롭게 구축되고 있는지에 대해 ‘몸’으로써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미디어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에 실패하게 될 것이고 이는 이 미디어가 초래한 창조성의 역습 앞에 속수무책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대응이 소셜미디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서 비롯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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