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Brief

디지털사회 제 30호: 정보화 시대의 정치적 집단 극화와 인권

Author
ssk
Date
2020-03-20 06:35
Views
440
정보화 시대의 정치적 집단 극화와 인권

김종우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이제 정보화는 단순히 인프라를 넘어서서 삶을 구성하는 양식과 사회적 관계의 양상을 바꾸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ICT의 발전에 따른 언로의 증가는 개인 미디어 플랫폼의 확산과 함께 미시 담론과 거시 담론의 경계를 허물고 있기도 하다. 단적으로 이제 정치 담론은 전통 미디어를 넘어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도 정치적 민주화, 제도적 민주화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점차 다원주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행위자가 자신 혹은 조직의 권리 요구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 요구의 중심에는 인권이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인권과 정치의 관계는 이러한 다원주의의 심화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특히 신문, 방송과 같은 전통 미디어는 대중화된 정치 담론을 생산하는 핵심 기제로 여전히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전통 미디어는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포털 뉴스를 통해 빠르게 소비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정파성(partisanship)을 중심으로 특정 집단 내에서 담론의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고립되는 과정인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의 심화 양상이 여러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인권에 관한 서사와 담론도 이러한 집단 극화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라는 표상을 둘러싼 다양한 담화는 차별, 혐오와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치 극화가 이루어지는 대표적 사례이다. 보편성을 토대로 하는 인권 역시 다양한 서사 방식으로 해석된다는 점은 이미 인권에 관한 사회학, 정치학적 연구에서 1990년대 이후 계속하여 주목받는 연구 영역이기도 하다. 필자는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 사회적 표상으로서 어떠한 담론을 통해 구성되는지를 2000년 이후 20년간의 언론 보도를 코퍼스(corpus, 말뭉치)로 구축하여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서 필자는 인권에 관한 상이한 언어와 사회적 표상화 경향을 포착하기 위해 word2vec을 통해 코퍼스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인권의 사회적 표상화와 정치 극화 경향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명료하게 나타난다.

필자의 이전 연구를 통해 분석한 결과, 차별금지법과 인권의 문맥적 의미 유사성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단어의 문맥적 의미의 유사성을 추론하기 위해 적용한 word2vec 분석 결과, 차별금지법과 인권은 상반된 유사도를 보인다. 상반된 유사도는 두 단어가 문맥적으로 반대되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 어휘 사이의 유사도 차이가 클수록 두 어휘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두 어휘가 쓰이는 맥락이 배타적일 수도 있음을 뜻한다. 위와 같은 결과는 인권이 차별금지법과 의미적 유사성이 높지 않다는 점, 즉 인권과 차별금지법이 상반된 문맥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결과이다.

그밖에 인권과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의 목록을 살펴보면, 인권이 주로 어떤 어휘와 문맥적으로 유사한 맥락에서 쓰이는지 추론할 수 있다. 인권과 문맥적으로 유사한 맥락에서 쓰인다는 의미는, 문장에서 인권이 들어갈 자리에 다음 단어를 대치하더라도 문맥에서 의미의 유사한 정도가 유지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의미한다. 인권이 쓰이는 문맥과 상반된 상황에서 주로 사용되는 어휘는 ‘권리’, ‘차별금지법’, ‘혐오’, ‘장애’, ‘성소수자’, ‘반대’ 등으로 나타난다. 단적으로, 이 어휘들은 인권과 거리가 먼, 즉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을 수 있음을 뜻한다. 차별금지법도 인권과 유사한 결과를 보인다. 차별금지법의 사용 맥락과 상반된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는 ‘권리’, ‘혐오’, ‘인권’, ‘반대’로 나타난다.

이는 차별금지법과 인권 양쪽에서 각각 인권과 차별금지법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임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이다. 위의 분석 결과는 다수의 문서에서 차별금지법과 인권을 다른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결과이다. 차별금지법과 인권이 상이한 맥락에서 사용된다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차별금지법과 인권의 두 개념이 상호 친화적이라는 전제와 달리, 두 개념이 배타적으로 쓰이는 맥락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뜻한다. 동일한 코퍼스에 대한 구조화 토픽모델링(STM) 결과도 인권 담론의 정파성과 정치 극화 양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과를 보인다. 인권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여러 층위의 의미를 부여받은 어휘이다. 인권의 의미에 관한 규정은 차별금지법에 관한 여러 담론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인권 담론의 다양성은 일정하게 고른 분포를 보이기보다, 특정 쟁점을 중심으로 양극화된 양상을 보인다. 특히 인권에 관한 전통적 논쟁인 보편성과 특수성, 상대성에 관한 논쟁이 한국의 인권 담론 내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회적 표상은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에 관해 질문한다. 한국 사회가 인권에 관한 지식을 상식으로서 논의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인권을 지식으로 수용하고, 일상의 다양한 담화적 상황 속에서 인권을 말하게 될 때, 인권은 그 수용자가 인지하는 세계에 관한 스키마(schema)에 의해 재구성된다. 과학적 지식으로서의 인권이 일상적 지식의 담화가 될 때, 두 지식으로서의 인권의 무게는 같지 않다. 사회적 표상으로의 인권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존재한다. 인권이라는 하나의 기표가 존재하지만, 기의(記意)라는 기표의 내부 공간은 중층적이고 가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표 내부의 공간은 다양한 행위자의 정체성과 이념을 반영하는 사회적 표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여기서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 내재하고 있는 의미의 한 측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스타인(C. Sunstein)이 집단 극화를 정의하며 유사한 이념을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 이념적 극단주의 경향이 점차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듯, 사회적 표상화는 집단 극화의 한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권’이라는 표상의 발화적 수행성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형사적 절차에 따르는 피의자 권리의 문제에 관한 논란에서 차별금지법의 사례에서 등장한 인권 담론의 사회적 표상이 유사한 내용과 논증 방식을 갖추고 재생산되고 있다. 인권이 직면한 현실은 국제규범과 사법제도, 정책의 영역에서 이러한 인권 담론의 다양한 대중적 이해와의 소통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관한 과제이다. 이 지점에서 인권 정책의 입안과 인권에 관한 일상적 지식의 관계(학술적, 과학적 인권과 일상적 인권 담론의 괴리)에 관한 연구가 향후 이루어질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경을 넘어선 민주적 공론장이 정보화에 따른 상호작용의 확대와 시민사회의 성숙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전망은 여러 방면에서 위협받고 있다. 누스바움(M. Nussbaum)이 우리 사회의 혐오가 주체의 안과 밖의 경계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 바와 같이, 인권을 둘러싼 혐오의 담론은 집단적 에고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권이 보편성의 담화를 통해 더욱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윤리적 가치를 내세웠으나, 역설적이게도 인권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타자 혐오와 배제의 담론이 만연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권을 둘러싼 다양한 담화와 서사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론장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개별 정치 행위자의 언로가 정보화를 통해 다원화되며 정치 담론의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정치의 영역은 점점 편협해지고 있다. 소통과 타협에 근거한 정치 과정의 상실과 정치 담론의 집단 극화에 따른 과잉정치담론화가 공존하는 역설을 극복하려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al Science)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디지털사회] 제30호
발행인: 조화순
발행일: 2020년 3월 16일
ISSN 2586-3525(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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