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Brief

디지털사회 제 29호: 네트워크화된 개인과 온라인 공론장의 가능성

Author
ssk
Date
2020-02-14 18:41
Views
1259
네트워크화된 개인과 온라인 공론장의 가능성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지난 2018년 11월 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해 발생했던 통신망 장애는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이 접속을 전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화통화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없고, 카드결제를 할 수 없으며,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사소한 불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은 접속과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들이 우리 일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사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접속을 전제로 하게 된 변화의 정도를 더 크게 실감할 수 있다. 당시 앞으로의 가능성 또는 불가피한 제약으로 꼽혔던 것들이 이젠 대부분 실현되었거나 해결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발전과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기와 서비스를 활용하는 과정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누적된 결과다. 기술이 구현하는 기능은 새로운 행위를 가능하게 하지만, 필요와 방향은 그것의 활용을 통해 제안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새로운 기술이 언제나 의도된 쓰임새로만 사용되고 예상된 결과로만 이어지지 않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전과 그것의 활용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수요가 제안되거나 뜻밖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과 비관 모두 경계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온라인 공론장은 누구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신문과 TV로 대표되는 기존 공론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특히 정보와 의견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기존 공론장과 달리 온라인 공론장은 쌍방향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다양한 의견 표출과 합의가 더 많이 가능해져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되었다.

그런데 정보사회의 계속된 진전과 더불어 시민 대부분이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일상적으로 많은 시간을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할애하게 되었음에도 기대와 달리 온라인 공론장은 활발한 토론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만 전개되지 않았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자신과 같은 의견을 확대재생산하고 다른 의견은 배척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오히려 온라인 공론장은 합의가 아닌 대결이 더 두드러지는 여론의 파편화 또는 집단극화가 이루어지는 장으로 해석되는 사례가 더 많기도 하다.

온라인 공론장을 기반으로 합의된 여론의 형성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높였던 주요한 근거는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이다. 국가권력을 견제 및 감시하고 국가와 사회를 중재하는 시민사회적 특징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 공론장은 인터넷이 제공하는 기능을 더한 온라인 공론장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매개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함께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가지 더 있다. 먼저 온라인 공론장이 토론과 합의를 위해 기획된 것인가이다. 게시판, 블로그,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대표적인 온라인 공론장의 사례로 꼽히는 공간들은 기본적으로 토론과 합의보다는 접속을 전제로 사용자의 연결을 추구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이다. 서비스를 사용하는 용도로서 토론과 합의가 포함될 수 있지만,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토론과 합의를 위한 목적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정한 규칙을 통해 시도된다.

다음으로 인터넷의 기본 속성 중 하나인 익명성이다. 신분과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익명성은 그 반대일 때 주어지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기획할 수 있지만, 과도한 자기전시나 일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특징보다 우선하여 고려해야 하는 점은 비대면적 의사소통 과정에서 익명성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비대면적 의사소통 과정에서는 대면적 의사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표정, 억양, 몸짓과 같은 발화내용 이외의 정보를 활용할 수 없고, 이러한 조건에서는 의견이나 정보가 불충분하게 전달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트위터의 ‘리트윗’이나 페이스북의 ‘공유’가 반드시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고려하면 온라인 공론장을 생산적인 토론을 바탕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장소라기보다는, 시민들이 제시한 의견과 공유한 정보가 다른 시민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 및 활용되어 다양한 의견과 정보가 개개인의 시민들에게 효율적으로 제공되는 장소로 전제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공론장에 기대되었던 토론과 합의의 과정들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합의’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이해할 때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온라인 공론장의 구도는 온라인 공론장과 기존 공론장의 작동방식이 변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초기의 구도가 신문과 TV를 통해 전달된 정보와 의견에 대해 온라인 공론장을 통한 피드백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면, 현재는 온라인 공론장으로부터 시작된 정보와 의견들이 의제로 채택되거나, 기존 공론장이 채택하지 않은 의제가 온라인 공론장을 통해 드러나는 방식이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과정이 커뮤니티, 블로그, 인터넷 게시판,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유형의 온라인 공론장과 언론 및 포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온라인 공론장에서 부각된 의제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고, 언론에 보도된 의제가 온라인 공론장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포탈은 온라인 공론장과 언론을 매개하는 동시에 의제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인터넷 사용자 상당수가 포탈을 기반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뉴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온라인 공론장은 어떤 사안을 합의된 결론으로 이끌지 않더라도 국가와 사회 사이에서 공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조명하고 부각함으로써 사회적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을 만든다.

레이니와 웰먼(2015)과 카스텔(2014)의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networked individualism)는 온라인 공론장의 과정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레이니와 웰먼은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가 소셜 네트워크, 인터넷, 모바일 환경을 활용한 개인 단위의 연결을 바탕으로 집단 내 구성원일 때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네트워크화된 개인은 정보를 얻거나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일상과 삶을 기획하는 데에도 활용하며, 일상의 반경을 넘어서는 환경과 관계로부터 받은 영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고유하고 복잡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카스텔은 비슷한 맥락에서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는 네트워크화된 개인들이 프로젝트 지향적인 활동을 통해 목표와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종합하면 온라인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과정들은 네트워크화된 개인의 참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온라인 공론장에 참여하는 네트워크화된 개인은 합의를 기대하며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의제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이나 관심 여부의 표현까지만 의도할 수도 있다. 자신의 견해를 주장과 근거로 제시하거나, 누군가의 견해를 공유하거나, ‘좋아요’ 또는 ‘싫어요’를 표시하는 것 모두 어떤 형태로든 의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넓게는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공론장의 의견들을 읽으며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형성하는 것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가 의의가 있는 지점은 시민을 능동적 주체로 전제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보사회의 진전이 더욱 광범위하고 깊은 수준으로 이루어질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관점은 더욱 필요하다. 개인이 소화하기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의 양, 그리고 점차 명확한 판단이 어려워지는 가짜뉴스의 증가, 정보통신기술이 이전보다 더 많은 일상의 영역을 대체해가는 변화 속에서 우려되는 문제들을 해소하고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초기의 기대대로 합의의 경험을 늘려가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시민과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리 레이니·배리 웰먼, 김수정 역, 2015.『새로운 사회운영 시스템』, 에이콘.
마누엘 카스텔 외, 박행웅 역, 2009.『네트워크 사회: 비교문화적 관점』, 한울아카데미.

*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al Science)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디지털사회] 제29호 발행인: 조화순
발행일: 2020년 2월 15일
ISSN 2586-3525(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