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 제74호: 유럽 사례로 본 디지털 공공서비스의 불균형적 포용과 이주민의 사회적 소속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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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k
작성일
2026-06-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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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례로 본 디지털 공공서비스의 불균형적 포용과 이주민의 사회적 소속감
박선영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1. 들어가며: 기술적 도구에서 ‘사회적 창구’가 된 디지털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화는 단순한 업무 효율성 제고를 넘어선다. 이제 디지털은 개인이 사회적 시스템과 규범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강력한 행정적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시민이 공공서비스를 경험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과거 관공서나 대면 창구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국가 제도와의 상호작용은 이제 대부분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창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민과 국제적 교류가 활발한 오늘날의 한국과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이주민의 사회 적응에 공공서비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이미 수많은 연구가 입증한 바 있다. 특히 이주민의 관점에서 볼 때, 실생활에 필요한 공공서비스가 디지털로 제공되는 방식은 정착 사회가 이주민의 사회 통합에 필요한 규범과 가치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웹사이트가 얼마나 직관적인지, 제공되는 언어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정보가 정확하고 포괄적인지 등은 단순한 시스템 화면(UI)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사회가 이주민과 같은 소수자를 동등한 구성원으로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제도적 신호로 작용한다. 본 브리프는 필자가 최근 출간한 독일과 네덜란드의 고숙련 이주민 연구를 바탕으로, 디지털화가 이주민의 사회적 소속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디지털 공공서비스 개선에는 어떤 방향성이 필요할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2. 이론적 지평: 디지털 매개를 통한 사회적 소속감과 제도적 인정
사회적 소속감은 단순히 특정 영토에 거주한다는 법적·물리적 사실을 넘어,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용되었다는 심리적·관계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주민들은 새로운 사회에 도착하면서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문화적, 관계적 정체성을 새로 형성해 가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사회적 소속감은 그들의 삶의 질과 만족감,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리 전반에서의 적응과 안정적인 통합 – 즉 동등하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는 사회통합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디지털 공공서비스는 개개인의 이러한 소속감에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국가는 디지털 인프라를 마련해 시민과 상호작용하며, 이 과정에서 누가 시스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통해 ‘사회적 경계’를 제공하곤 한다. 공공서비스가 일상의 질과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사회적 참여 기회의 박탈이며 종국에는 정착 사회에 대한 정서적 소외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3. 유럽 이민사회 내 고숙련 이주민들의 디지털 공공서비스 만족도와 사회적 소속감
이주민이 도착국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디지털 공공서비스는 대부분 '거주 등록'과 같은 법적·행정적 절차다. 이러한 분야는 철저히 관리자인 국가의 입장에서 이주민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구축된 시스템이다. 반면, 이주민의 실질적인 소속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교육, 의료, 복지 등 일상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서비스다.
필자는 유럽의 대표적 이민국가인 네덜란드와 독일 내 고숙련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여 이들이 디지털 공공서비스를 통해 느끼는 소속감의 실체를 추적했다. 기존 디지털 격차 담론은 대체로 개인의 기기 활용 능력 부족에 중점을 두고 개인 디지털 리터러시 증대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본 연구는 디지털 리터러시와 제도적 친숙도가 높은 고숙련 이주민을 분석함으로써 개인 차원이 아닌 제도적 차원의 문제점에 집중하였다.
"나는 EU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관공소들 웹사이트를 보자면 나 같은 이방인은 이 모든 복지 서비스에 대해 알 권리가 없다고 느낍니다." — 독일 거주 스페인계 호주인 교수
"거주 등록이나 신분증 발급 같은 이민 과정은 매우 매끄러웠지만, 정작 내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찾거나 주치의를 구하는 일상의 기본적 과정은 어떠한 구체적인 영어 안내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현지인들 모두가 영어를 잘하는데도, 정작 이런 서비스는 네덜란드어로만 제공되어 네덜란드어를 못하는 모두가 이방인으로 취급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네덜란드 거주 이집트인 과학자
인터뷰 참여자들은 거주지 등록이나 모바일 신분증 발급 같은 '이주 통제 관련 시스템'에서는 만족스러운 디지털 환경을 경험했다. 구체적으로, 이민 심사, 비자 등록, 세금 징수 등 국가가 이주민을 식별하고 관리·감독해야 하는 영역은 고도로 통합된 디지털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주민에게 자신이 제도 안에 포섭되어 있다는 경험을 제공한다. 반면에 일상생활 속에서 디지털 공공서비스를 경험할 때는 대체로 강한 좌절감과 낮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주치의 찾기, 은행 계좌 개설, 아동 보육, 주택 정보, 지역 복지 등 이주의 범위를 벗어난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 영역은 명확한 디지털 가이드라인이 부재하거나, 그나마 파편적으로 정보가 존재한다 해도 현지어로만 제공되어 이주민들의 접근 자체가 배제된 구조로 방치되어 있었다.
특히 본 연구에 참가한 고숙련 이주민들은 자신이 사회경제적 공헌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며, 거주 국가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는 일상에서 복잡한 절차와 언어 장벽, 제도적 배제를 마주했을 때 더 강한 박탈감으로 환원되며, 낮은 사회적 소속감을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즉, 국가가 이주민을 노동력이나 세원으로 관리할 때는 디지털 행정 시스템으로 적극 포용하지만, 지역사회의 이웃들과 동등한 수준의 사회적 권리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의 경계에서는 ‘타자’로 구분하는 ‘불균형적 포용’의 메시지로 작용하는 것이다.
4. 마치며
유럽의 대표적 이민국인 네덜란드와 독일의 사례는 다양성 기반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중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관리자적 시선에만 머물러, 이들이 보통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차별 없는 디지털 공공서비스를 경험하지 못하면, 사회적 고립과 집단간의 분열과 같은 사회통합의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포용을 기대했던 디지털 행정이 장벽으로 돌변할 때, 이주민은 자신이 국가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본원적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공공서비스는 매끄럽게 작동할 때는 보이지 않는 배경 인프라 같지만, 실패할 때는 개인의 소속감을 단숨에 밀어내는 단단한 장벽이 된다.
현재 네덜란드와 독일의 파편화된 디지털 행정 속에서는 원하는 서비스를 찾고 절차를 증명하는 모든 인지적·시간적 부담이 고스란히 이주민 개인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다. 많은 이주민이 이러한 맹점을 검증되지 않은 소셜 미디어나 개인적 인맥을 통해 메꾸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즉, 사회가 감당해야 할 통합의 책임이 소수자 개인에게 전가되는 불평등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 공공서비스는 더 이상 중립적인 기술의 영역이 아니다. 이는 새로 우리 사회에 정착하는 이주민들이 사회의 포용성을 체감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정치적·감정적 인프라로 작동한다. 특히 디지털 행정 시스템의 포용성은 '그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인가'가 아닌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동등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는가'를 통해 실현된다. 꾸준히 증가하는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는 이제 이들을 ‘인적 자본’으로 대우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디지털 공공서비스를 통해 전달되는 일상 속 '제도적 환대와 포용'을 구축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 본 이슈 브리프는 다음의 연구 논문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박선영. (2026). How Digital Public Services Shape Migrants’ Sense of Belonging: Insights from Highly Skilled Migrants in Germany and the Netherlands. 세계지역연구논총, 44(1), 35-61.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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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al Science)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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