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 제45호: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 후퇴
작성자
ssk
작성일
2023-02-12 13:40
조회
2397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 후퇴
장한일(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적 양극화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큰 화두이다. 미국의 경우, 과거에 비해서 중도적 성향의 의원의 수가 줄어들었고 정당 간 정치인들의 이념적 차이가 증가했다. 그리고 지지하는 정당과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적 태도의 차이도 과거에 비해서 증가했다.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는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들의 일상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민들은 장학금 수령자나 직장 동료, 혹은 데이트 상대를 선택함을 있어서 그들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를 고려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따라서 그들의 도덕적/지적 능력을 판단하며, 자신과 다른 정당을 지지할 경우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요약하면, 정당 엘리트들 사이에서의 이념적 양극화, 정당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정서적 양극화, 그리고 비정치적 영역까지 당파적 판단이 침투하는 현상이 동시대의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연구들은 유럽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한국 사회 역시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서 정치인과 시민들이 극명하게 분열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가상준(2014), 강원택(2012), 박윤희 외(2016)는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소속정당에 따른 이념적 차이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고한 바 있다. 미국처럼 정서적 양극화가 과거에 비해서 최근 들어 심화되었는지에 대하여 통시적으로 연구한 결과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으나, 장승진·장한일(2020)과 김기동·이재묵(2021)은 정서적 양극화가 당파적 시민들의 일상적 영역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민주주의의 후퇴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증가하는 동안, 민주주의 연구자들은 민주주의가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도전을 받고 있음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Bermeo(2016)의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까지는 대체로 (a) 민주적 정당성이 부재한 집단의 쿠데타(예를 들어,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나, (b)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잡은 집단이 선거와 같은 핵심적 제도들을 무기한적으로 폐지(예를 들어, 필리핀의 Ferdinand Marcos), 혹은 (c) 투표 조작과 같은 선거 부정을 통해서 민주주의 체제가 붕괴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경우 이러한 요인들에 의한 민주주의의 붕괴는 감소한 반면에, (d)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일시적으로 민주주의적 장치들을 무력화하거나(예를 들어 2006년 태국에서의 쿠데타), (e) 행정부가 사법부나 입법부의 견제를 무력화하거나 정치적 반대세력과 언론의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위축시키는 장치를 개발(executive aggrandizement), 혹은 (f) 집권당 후보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등의 ‘전략적’인 선거 개입 등이 증가하고 있다.
이 중에서 연구자들은 특히 행정부가 자신들의 힘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수준이 점차적으로 약화되는 현상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아직 민주주의 체제/규범/문화가 안정화되지 않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이 민주주의 역사가 긴 나라들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Orhan 2022; Levitsky and Ziblatt 2019). 게다가 민주주의 체제는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장치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행정부가 선거와 같은 핵심적 장치들을 유지하면서 일부 장치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에게 크게 문제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행정부의 확대는 당장 민주주의의 붕괴를 초래하지 않더라도 장기간에 걸쳐 민주주의의 질을 감소시킬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Orhan(2022)이 견제와 균형, 다원성에 대한 존중, 법에 의한 지배, 시민권 보장 등의 관점에서 한 나라의 제도적 장치들이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 후퇴 현상을 그 정도에 따라서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는데, 1990년까지는 대체로 정도와 무관하게 후퇴현상을 경험하는 나라의 수가 감소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High level과 Very-High level을 경험하는 나라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2020년에는 거의 90개 국가에서 High level이나 Very-High level의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 후퇴
최근 들어 정치적 양극화가 행정부 확대에 대한 시민들의 용인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민주주의 수준의 후퇴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존중이 약한 정치인/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반민주성을 용인하고 투표하는 시민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훼손하고 행정부 역할의 확대를 추진하는 집권 세력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반민주성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거에서 여전히 시민들이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들의 용인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할수록 증가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제도의 유지’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선거 승리’이기 때문이다.
경험적 연구 결과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Kingzette et al.(2021)은 미국의 정서적으로 양극화된 시민들이 ‘헌법적 권리 제한’에 대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당일 경우에는 강하게 찬성하는데 반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강하게 반대하는 경향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Graham and Svolik(2020)은 미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후보자 선택 실험에서 오직 소수의 시민들만이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후보자들의 태도를 고려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민들의 비율이 정당 간 양극화가 강화될수록 감소함을 보고한다. 뿐만 아니라 Orhan(2022)은 미국을 포함한 53개국에서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였는데 정서적으로 양극화된 나라일수록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상이 나타남을 발견한다.
한국은 어떤가?
정치적 양극화가 미국 못지않게 심각한 한국 사회는 어떨까?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당파적으로 양극화된 시민들은 민주주의보다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승리를 우선시할까? 이 글의 저자와 장승진이 2022년 발표한 “당파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그리고 당내민주주의: 정당 지지자의 당내 이견에 대한 관용성 연구”에 따르면, 지지 정당에 대한 감정적 선호가 극단적으로 강화될수록 지지 정당 내부에서의 이견에 대한 관용도가 감소하며, 이러한 감소 경향성은 포퓰리즘 성향이 강해질수록 두드러진다. 물론 이 연구는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시민들의 반민주주의적인 태도가 정치체제 수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시민이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만 특별히 덜 민주주의적인 태도를 취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가 어떤 위협에 봉착해 있는지,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가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련 연구들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가상준. 2014. "한국 국회는 양극화되고 있는가?" <의정논총> 9(2): 247-272.
강원택. 2012. "제19대 국회의원의 이념 성향과 정책 태도." <의정연구> 18(2): 5-38.
김기동, 이재묵. 2021. "한국 유권자의 당파적 정체성과 정서적 양극화." <한국정치학회보> 55(2): 57-87.
박윤희, 김민수, 박원호, 강신구, 구본상. 2016. "제20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자 및 후보자의 이념성향과 정책태도." <의정연구> 22(3): 117-157.
장승진, 장한일. 2020. "당파적 양극화의 비정치적 효과." <한국정치학회보> 54(5): 153-175.
장승진, 장한일. 2022. “당파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그리고 당내 민주주의: 정당 지지자의 당내 이견에 대한 관용성 연구.” 56(5): 87-109
Bermeo, Nancy. 2016. “On democratic backsliding.” Journal of Democracy 27(1): 5-19.
Graham, Matthew H., and Milan W. Svolik. 2020. “Democracy in America? Partisanship, polarization, and the robustness of support for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14(2): 392-409.
Kingzette, Jon, James N. Druckman, Samara Klar, Yanna Krupnikov, Matthew Levendusky, and John Barry Ryan. 2021. “How affective polarization undermines support for democratic norms.” Public Opinion Quarterly 85(2): 663-677.
Levitsky, Steven, and Daniel Ziblatt. 2019. How Democracies Die. New York: Crown Publishing Group.
Orhan, Yunus Emre. 2022. “The relationship between affective polarization and democratic backsliding: comparative evidence”. Democratization 29(4): 714-735.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al Science)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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