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Brief

디지털사회 제 16호: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

작성자
ssk
작성일
2018-12-17 05:14
조회
1394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

박영득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정치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간주 되는 시민들의 선호에 정부가 지속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정의 현실이 마주하고 있는 아픈 현실은 시민이 공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 더 나아가 정부로부터 정책을 통해 응답받을 수 있는 권한이 사실상 불균등하게 주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정치 권력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여 그 요구를 관철하는 권력에 대한 접근권 마저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누리기 어렵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다. 이러한 국정철학을 기초로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들이 청원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정치 권력에 대한 접근성이 불평등한 현실에서 정부가 개별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청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물론 민주정에서 유일한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를 우회한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취약한 시민-정당의 연계와 유명무실한 의회 청원제도를 생각해보면, 청와대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무작정 폄훼하고 싶지 않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은 시민들의 참여를 충분히 유도하지 못해 유명무실화된 국회 청원에 비하면 참여도의 측면에서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약 36만 건의 청원이 올라왔고 50여 건의 청원이 청와대나 정부의 공식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답변을 받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청와대 국민청원이 개설 당시의 의도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답변기준인 20만 회의 추천수를 돌파한 청원의 상당수는 국민의 공분을 사거나 특정 사회집단을 대거 청원 동의로 끌어낼 수 있는 사안이 주를 이룬다. 형사사건의 가해자를 엄벌해달라는 요구와 같이 행정부의 권한 밖에 있는 사안들은 국민청원의 답변기준 20만을 채운 청원내용 중 가장 흔한유형이다.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팀추월에서 ‘왕따 주행’논란을 일으킨 두 국가대표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식의 국정과는 큰 관계가 없는 사안도 국민의 공분에 힘입어 60만 건을 넘는 추천수를 얻어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은 우리 국민들이 어떤 문제에 분노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국민청원을 통해 국민들이 삶에서 느끼는 정책의제가 발굴되고,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정부의 답변을 듣는 경우는 상당히 적다. 왜 그런가? 필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공식 답변 기준으로 삼은 20만 건의 추천수가 너무 높은 것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본다. 인구 3억이 넘는 미국의 백악관 청원사이트(We the People)의 답변기준이 10만 회인데 인구가 5천만 명인 한국에서 20만 회의 추천수는 다소 높다. 전국민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이거나, 특정한 사회집단을 강력하게 동원할 수 있는 특수한 의제가 아니고서는 20만 건의 동의를 얻는 것이 어렵다. 반면 사안 자체가 자극적이지 않으면 그 사안의 실질적 중요성이나 가치에 비해 덜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시민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나, 국정운영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들, 그리고 더 나은 정부정책을 위한 제언들은 정부로부터 답변 받을 기회를 누리지 못한채로 남아있는 것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는 조사에 따르면 추천수가 5,000회만 넘어도 업로드된 전체 청원문서 수십만 건 중 추천수에서 상위 1퍼센트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어떤 청원이 추천수 5,000건을 넘기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추천수 5,000건을 넘긴 청원문서가 수천 건에 이르기 때문에 이러한 청원에 모두 응답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추천수 약 5만 회, 또는 10만 회 정도로 답변기준을 적절히 하향하여 청와대 국민청원이 놓쳤던 국민들의 목소리가 정부에 의해 응답받을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청원 답변을 동영상으로만 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인지도 의문이다. 답변기준을 대폭 하향해서 최대한 많은 청원이 정부의 공식답변을 받을 수 있게 하되, 답변형식은 문서를 통한 공개답변서를 통해 하고 20만 건이 넘는 경우에 한하여 동영상을 통한 답변을 하는 것도 정부의 답변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다.

지금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들이 국정에 대한 의견을 집단적으로 밝히고, 정책을 제안하고, 삶에서 발견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정치적 의제로 발굴하는 기능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는 국민들의 특정 사안에 대한 분노의 크기를 측정하는 분노측정기의 기능에 가깝다. 청와대가 온라인 국민청원을 도입하면서 기대했던 국민청원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페이지가 설치된지 1년 4개월 가량이 지난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의 실태를 돌아보면 그동안 우리 정부가 국민들의 제안들 중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오직 국민의 분노와 여러 집단들의 동원만이 유의미한 목소리로 간주되는 청와대 국민청원보다는 국민들이 삶 속에서 겪는 어려움이 정부에 전달되고 정부로부터 책임있는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되기를 바란다.

 

*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ety)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디지털사회 16호

발행인: 조화순

발행일: 20181215

ISSN 2586-3525(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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