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 제68호: 인권 담론 내 미-중 규범 경합의 양상과 디지털 규범 질서에 대한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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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k
작성일
2025-12-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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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담론 내 미-중 규범 경합의 양상과 디지털 규범 질서에 대한 함의
이소나(고려대)
파편화된 국제 규범 질서
인권은 현재 국제 질서의 핵심 기제로 자리 잡았으며, 이른바 “문명의 기준”이라 일컬어질 만큼 규범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 (Donnelly 1998). 국가는 인권 규범을 준수함으로써 정당성을 부여받고, 이러한 고차원적 도덕 가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서로를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곧 “국제 사회”라는 개념의 성립을 가능케 한다 (Ambrosio 2010).
그러나 인권은 추상적이고 다양한 규범들로 이루어져 있다. 즉, 다양한 인권 규범 간의 우선순위, 해석의 기준, 행위 판단 및 평가의 적용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Rushton 2008; Ginsburg 2020; Renouard 2020; Terman and Búzás 2021). 국가들은 크게 인권의 자유주의적 해석과 비자유주의적 해석을 옹호하는 두 진영으로 양분된다. 전자에 속하는 국가들은 표현의 자유, 자기결정권, 법치 등과 같이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중시하는 개인의 시민적정치적인 자유와 권리에 방점을 둔다 (von Stein 2013). 이들은 인권을 국가 권력이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인 가치로 규정한다 (Kinzelbach 2012; Yang 2017; Chen and Hsu 2021; Goddard et al. 2024). 반면, 후자의 국가들은 국가 주권을 강조하며 사회경제적인 발전의 우선성을 주장한다. 이들은 국가가 생존적인 기반을 마련해주어야만 개인이 자유와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Sceats and Breslin 2012; Foot 2014; Weiss 2019; Lu 2023).
이러한 국제 규범 질서의 파편화는 어떤 양상을 띠며, 그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또한, 이를 통해 국제 질서의 미래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이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유효한 자료 중 하나는 미국과 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권리(rights)”와 같은 인권 규범을 어떠한 맥락에서 활용하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즉, 현재 국제 질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국가가 인권을 논할 때 함께 쓰이는 단어와 그 수사적 전략(rhetoric strategy)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인권 영역을 넘어 국제 질서 전반에 대한 시사점도 가늠해 보고자 한다.
미국과 중국의 인권 해석: 전략적 차이
미국은 인권의 자유주의적인 해석을 표방한다 (이 글에서 분석 대상 기간은 2008년에서 2021년까지를 기준으로 한다). 유엔 회원국들이 서로의 인권 현황에 대한 권고사항(recommendations)을 주고받는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이하 UPR)’에서 미국이 작성한 권고사항은 이러한 입장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은 “권리”를 언급할 때, 표현의 자유 증진과 국제법 준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권고하는데, 이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규범적 근간을 옹호하고 강화하기 위함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규범 활용 행태가 상대국의 정치 체제와 무관하게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비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어조가 다소 강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권 규범의 자유주의적 해석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수호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UPR 제2주기에 미국은 일본에게 “성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입법하고 이행하라”고 권고하였다. 이는 1주기에 미국이 북한에게 “국내 인권 기구를 설립하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ICCNI의 인가 및 OHCHR의 기술 지원을 수용하라”는 권고와 법적제도적 체계 확립을 주문했던 맥락과 일맥상통한다.
반면, UPR 권고사항을 통해 본 중국은 상대국에 따라 “권리”의 맥락을 달리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우선, 중국은 자국과 가치를 어느 정도 공유하는 비민주주의 국가들에는 국가 주권과 경제 발전을 중시하는 반자유주의적인 맥락에서 인권 규범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는 중국이 옹호하는 인권 규범의 해석에 대한 지지세력을 규합하려는 의도이다.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 중국이 표방하는 목표는 “신흥 규범 강대국(emerging normative power)”이 되는 것이다 (UN 2019). 이는 물리적 힘이 아닌 규칙과 가치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존 강대국보다 우월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이다. 동시에, 현재 국제 질서 내부에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국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임을 시사한다.
즉, 중국은 인권 규범의 자유주의적 해석에 대안을 제시하여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한편, 기존 해석을 지지하는 국가들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전략을 취한다.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전달하는 UPR 권고사항에서 오히려 자유주의적 해석을 차용하는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른바 ‘자유주의 파수꾼(liberal watchdog)’을 자처하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이 UPR 제1, 2주기에 미국과 독일에 전달한 권고사항은 각각 민주주의 국가들이 여전히 국제 인권 조약을 비준하지 않거나, 이민자 및 소수 집단과 같은 취약 계층(vulnerable groups)에 대한 보호를 소홀히 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경합 전략은 민주주의 국가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그들이 옹호하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 자체의 정당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되레 중국이 국제 규범 질서를 이끌고 관리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디지털 공간으로의 규범 경합 확장 및 시사점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인권 분야에서의 담론 및 규범 경합의 구도와 논리가 디지털 분야에도 그대로 투영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공간을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영역으로 규정하며 시민 사회의 역할을 중시한다. 반면, 중국은 디지털 거버넌스에 방점을 두고, 국내 사회 안정에 위협이 되는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국가의 디지털 주권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다 (Hulvey 2021). 디지털 공간은 역사가 짧아 아직 규범이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인권 분야처럼 경합의 심도 또한 깊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권 분야에서 나타난 미-중 간의 경합 패턴이 반복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국제 규범 질서의 파편화와 중국의 정교한 이중 경합 전략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현재 국제 인권 체제의 취약성이다. 유엔 산하의 국제 인권 체제는 유엔 총예산의 1% 미만으로 운영되며, 이마저도 주요 회원국들의 재정 지원 중단이나 미참여와 같은 위협으로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David 2025). 파편적인 질서에 관심과 재정 기반의 결여까지 더해진다면, 이는 곧 힘의 공백으로 이어져 소수의 적극적인 국가들이 인권 규범의 정의와 적용, 즉 “문명의 기준”을 재정립할 위험을 높인다. 곧, 국제 질서 전반을 지탱하는 가치관이 변화한다는 의미이고, 나아가 새로운 국제 질서의 출현을 예고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공간에서의 규범 경합은 한쪽의 손쉬운 승리로 끝날 수도 있다. 물론, 규범 경합이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낳는 것은 아니다. 경합을 통해 규범의 해석이 풍부해지고 적용 범위가 긍정적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Linsenmaier et al. 2021). 그러나 파편화가 양극화가 아닌 다양화라는 보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과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첫째, 중국의 자유주의적 파수꾼 전략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의 위선을 공략하여 민주주의, 나아가서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정당성을 손상시키려 한다. 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어책은 인권 관련 관행을 일관적이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자국의 취약점을 선제적이고 투명하게 인정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중국이 민주주의의 과오를 무기화하기 전에 스스로 이를 도전 과제로 설정하고 실행 가능한 개선책을 제시한다면, 위선 논리로 국제 질서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중국의 전략을 무력화할 수 있다.
둘째, 파편화된 핵심 인권 규범의 해석을 중재하고 연계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인권을 국가 주권 중심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우선시하는 개념으로 재정의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수의 국가가 비자유주의적 맥락에서 인권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Terman and Búzás 2021). 이러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자유주의적 맥락만을 고집하는 것은 중국의 대안적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동조하는 국가들을 소외시킬 뿐이다. 정치적시민적 자유와 권리들이 경제 발전과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개념임을 설득해야 한다. 인권 담론 내 ‘발전’이라는 의제가 다층적 주제들을 포괄하며, 현재의 인식보다 훨씬 덜 편향적인 개념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숙의와 합의에 기반한 국제 규범 질서를 세우는 데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곧 디지털 공간에서의 규범 경합 환경을 조성하는 토대가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China’s Engagement in the International Order: Through Human Rights Norms, Currency Adoption, and Security Rhetoric> (2024)의 일부를 이슈브리프에 맞추어 요약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Ambrosio, T. (2010). Constructing a Framework of Authoritarian Diffusion: Concepts, Dynamics, and Future Research. International Studies Perspectives, 11(4):375–392.
Donnelly, J. (1998). Human Rights: A New Standard of Civilization? International Affairs, 74(1):1–23.
Chen, T. C. and Hsu, C. (2021). China’s Human Rights Foreign Policy in the Xi Jinping Era: Normative Revisionism Shrouded in Discursive Moderation. The British Journal of Politic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23(2):228–247.
David, R. V. (2025). New ISHR report reveals how governments work behind the scenes to defund the UN’s human rights work. International Service for Human Rights. https://ishr.ch/latest-updates/new-ishr-report-reveals-how-governments-work-behind-the-scenes-to-defund-the-uns-human-rights-work/.
Foot, R. (2014). ‘Doing Some Things’ in the Xi Jinping Era: The United Nations as China’s Venue of Choice. International Affairs, 90(5):1085–1100.
Ginsburg, T. (2020). Authoritarian International Law?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114(2):221–260.
Goddard, S. E., Krebs, R. R., Kreuder-Sonnen, C., and Rittberger, B. (2024). Contestation in a World of Liberal Orders. Global Studies Quarterly, forthcoming.
Hulvey, R. (2021). Cyber Sovereignty: How China is Changing the Rules of Internet Freedom. IGCC Working Paper No 2. escholarship.org/uc/item/7sg371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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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senmaier, T., Schmidt, D. R., and Spandler, K. (2021). On the Meaning(s) of Norms: Ambiguity and Global Governance in a Post-Hegemonic World. 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 47(4):508–527.
Lu, L. (2023). Be My Friendly Reviewers: How China Shapes the International Human Rights Regime. Working Paper. https://gsipe-workshop.github.io/files/GSIPE_Lu_04052023.pdf.
Renouard, J. (2020). Sino-Western Relations, Political Values, and the Human Rights Council. Journal of Transatlantic Studies, 18(1):80–102.
Rushton, S. (2008). The UN Secretary-General and Norm Entrepreneurship: Boutros Boutros-Ghali and Democracy Promotion. Global Governance, 14(1):95–110.
Sceats, S. and Breslin, S. (2012). China and the International Human Rights System. Chatham House (The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London, UK.
Terman, R. and Búzás, Z. I. (2021). A House Divided: Norm Fragmentation in the International Human Rights Regime.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65(2):48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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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ss, J. C. (2019). A World Safe for Autocracy? China’s Rise and the Future of Global Politics. Foreign Affairs, 98(4):92–108.Yang, X. (2017). The Anachronism of a China Socialized: Why Engagement Is Not All It’s Cracked Up to Be. The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 10(1):67–94.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al Science)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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