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Brief

디지털사회 제 15호: 다중극화 시대의 자치와 참여

Author
ssk
Date
2018-11-1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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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극화 시대의 자치와 참여

 

이소영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국사회는 다중 극화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양극화 차원을 넘어 지역이나 정파성에 기반한 정치적 양극화 현상은 정치과정 전반에 일반화되어 있다. 사회 구성원 간의 디지털 격차가 논의된 지 오래되었고 남녀 간, 세대 간에도 양극적인 사고의 차이가 확산되고 있다. 극화된 사회에서는 타협이 어려운 다양한 지점이 생겨나고 권력이나 자원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과 이 권력을 분산시키고자 하는 세력 간의 긴장도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불평등과 긴장은 중앙과 지방 간에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중앙-지방 간 불평등의 일차적 원인은 국가 기능이 중앙 정부에 모두 귀속되어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였지만 중앙의 대의체제와 관료체제를 지방으로 그대로 축소하여 이식하는 형태로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통제 하에 위임받은 권한만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지방의 자원과 권한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중앙의 자원과 권한이 비대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그 결과 중앙과 지방 간 격차가 회복할 수 없어 보일 만큼 커졌다. 이에 따라 최근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주재정권 등에 대한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이렇게 지방자치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현대 대중민주주의의 딜렘마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로서 풀뿌리민주주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런데 풀뿌리 민주주의에서는 참여와 숙의가 강조되고 있지만 대중의 참여와 숙의가 함께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모델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 연구자들은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보다 작은 규모의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질 때 참여와 숙의는 병행 가능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역은 이제 주민의 자율적 통치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 의미가 중요해지기 시작하였다.

 

균열과 갈등이 중첩되어 있는 사회에서 중앙 정부의 기능만으로는 이 갈등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인식과 함께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생활공간에서 주민의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지방자치에 주민참여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관료주도적인 공공서비스 제공의 형태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주민의 주체로서의 참여도 부족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지방자치제도가 주민참여를 배제한 채 출발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직접 자신과 관련된 지역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여 의사를 반영하는 과정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최근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주민자치를 제도적 영역 내로 포함시켜 협력적 거버넌스를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 지방정부가 독점적 서비스 및 행정권력 위상에서 벗어나 시민사회 등 민간부문의 행위자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거버넌스가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이러한 협력 거버넌스를 주민이 아닌 행정이 주도하는 경향이 있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일면도 있지만 행정과 주민 간 네트워크화된 거버넌스의 제도화는 풀뿌리민주주의의 모델로서 계속 확대되고 있다. 현재 모든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도’는 대표적인 민관 협력 거버넌스 제도로서 광역시도 뿐 아니라 구시군 및 읍면동 등 생활단위까지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저조한 참여나 주민참여예산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형식적 운영 등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주민이 참여해서 의견을 내놓아도 지방정부가 그 의견에 대한 수용 및 거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주민들이 편성할 수 있는 예산의 비율도 매우 낮아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예산권이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제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도보다 더 포괄적인 참여와 자치를 목적으로 최근 시범운영 되고 있는 ‘주민자치회’ 또한 주목할 만한 민관 협력 거버넌스 유형이다.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지역의 유지들로 구성되어 지자체의 행정적 동원정책이나 행정 보조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주민자치회는 실질적인 공동체 생활자치 실현을 목표로 주민자치업무와 지자체의 위탁업무를 담당한다. 서울시가 2017년부터 26개 동에서 시범 시행하고 2018년에 91개 동으로 확대한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상당히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주민이 정책과 예산에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갖는 동단위 생활 민주주의 플랫폼으로 출발한 서울형 주민자치회의 26개 시범 시행 동에서 지난 7월 개최한 첫 주민총회에는 각 동별 평균 약 500명씩의 주민들이 참여하였다. 거주 주민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직장생활이나 자영업 등 생활만 하고 있는 주민의 참여보장, 추첨에 의한 위원 선정, 위원에 대한 의무교육 실시, 전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총회 개최, 한 동네의 생활문제 해결방안을 담은 자치계획 수립 등을 기본요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와 차별화되어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의 융합을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패러다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시민원탁회의’도 지역의 주요 과제에 대해 주민들이 합의와 공감을 형성하거나 정책을 제안하고 토론하는 장으로서 여러 지자체가 적극 활용하고 있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의 한 형태이다. 그 중에서도 대구시는 시민원탁회의 운영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원탁회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공개모집으로 채택된 300~500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주요 현안에 대해 퍼실리테이터의 진행에 따라 토론을 전개하고 무선 전자 현장투표로 최종결과를 도출한다. 안전문제, 에너지문제, 시민복지, 주민참여예산,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지역의 여성문제, 무상급식 이슈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숙의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한다. 운영과정에서 시민의 적극적 참여 부족이나 민감성이 떨어지는 주제 등 본래의 목적과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자치와 참여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관심을 제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을자치 또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또한 지자체가 제도적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는 민관 네트워크의 한 형태이다. 민주화 이후 주민의 자율적 통치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서 지역의 의미가 중요해지자 시민사회 자체적으로 마을만들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마을만들기 운동이 보편화되고 마을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많은 지자체에서 마을만들기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자체가 민간 영역에 위탁하여 지원하는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사업은 마을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교육사업 뿐 아니라 마을 주민 스스로가 마을의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내며 마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둔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마을회의체가 동 단위 주민참여예산사업을 발굴·심의·선정하는 동지역회의 등을 대체하여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마을회의체들은 공식적 회의체인 동지역회의보다 마을의제에 대해 훨씬 더 깊이 있는 토론을 전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앞서 언급한 지방자치의 민관 협력 거버넌스들은 모두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서 직접 부딪히게 되는 문제에 대해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논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주민자치의 장이다. 여기서는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를 야기하거나 이에 저항하기 위한 논리들, 정파적 논리에 의한 정치적 견해 차이, 자원 배분의 수혜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 남녀 간 또는 세대 간의 심각한 갈등 등 극화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주민의 생활에 직접 관련되는 일인 만큼 주민이 충분히 토론하고 공감하여 공동체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주민참여와 자치를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민관 협력 네트워크는 삶과 정치가 분리되는 것, 즉 정책결정과정이 현실로부터 유리되는 것을 방지하는 중요한 장치로서 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또한 정책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온 집단들을 정책결정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치유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참여와 자치의 활성화에 대한 요구는 무엇보다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통해 주민들이 지역사회 및 마을의 현안을 결정하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우리 사회가 당면한 양극화와 이로 인한 반목과 적대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IT기술의 발달로 소통의 기제가 매우 다양해졌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소통의 채널이 왜곡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간에 소통이 차단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공동체를 결속시킬 수 있는 신뢰, 연대, 자발성 등의 조건들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다. 주민참여와 자치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을 극복하고 주민들에게 정책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함으로써 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ety)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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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사회] 제15호


발행인: 조화순


발행일: 2018년 11월 15일


ISSN 2586-3525(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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