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 제70호: 정책에서 정체성으로: 여론 양극화의 다층적 구조
작성자
ssk
작성일
2026-03-05 15:29
조회
51
정책에서 정체성으로: 여론 양극화의 다층적 구조
송준모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후연구원)
오늘날 많은 민주주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도전 중 하나는 구성원 사이의 극심한 분열, 다시 말해 여론의 양극화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공유된 가치를 기반으로 제도적 합의를 이루고, 합의 내에서 공존을 용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각에서는 계층, 인종, 성별 등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압력이 특정 정파나 이념에 대한 과도한 몰입을 억제하고 합의와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제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교차 균열의 구조가 무너지고, 모든 사회적 정체성이 정파적 적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경향이 관측된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이웃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거나, 같은 정당의 당원이더라도 서로 다른 종파의 교회에 출석하는 풍경은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인물은 데이트 상대나 고용 대상으로서 기피된다. 이에 따라 정치적 갈등의 전장 역시 경제적 자원의 배분이나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조정을 넘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적대시하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정체성의 대결로 변화한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양극화의 양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업은, 민주주의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에 필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양극화에 대한 개념정의 및 측정 방식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양극화에 대한 정의에 따라 측정 방법이 바뀌고, 결국 현상 이해와 해법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여론 양극화에 대해 서로 다른 규정을 적용하여 측정한 경험 연구들은 서로 다른 결론을 제시한다. 어떤 연구에서는 일반 유권자의 이념적 분포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보고를 하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유권자 사이의 이념적 균열이 과거에 비해 더 심화되었다는 보고를 한다. 동일한 자료를 활용한 연구들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은, 그만큼 여론의 양극화가 다차원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각 차원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개념의 정리가 중요함을 말해준다.
여론 양극화에 대한 가장 고전적이고 직관적인 정의는, 개별 의제 내부에서 의견분포의 쏠림이다. 예컨대 적절한 재산세율이 40~60%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0%나 100%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수가 늘어나는 양상으로서, 이 경우 양극화란 곧 정책이나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가 점점 중도에서 양 끝의 극단으로 몰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기존의 많은 연구들이 이러한 정의를 채택하여 분석을 수행하였으며, 특히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기제에 대한 탐구가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 동질적 집단 내에서의 폐쇄적 상호작용이 급진화로 이어지는 기제는 이제 극단주의의 발아를 설명할 때에 빠지지 않는 내용이다.
하지만 양극화를 개별 의제 내에서의 급진화로만 간주한다면, 서두에서 언급하였던 오늘날의 광범위한 분열을 설명하기 어렵다. 기존의 경험적 연구들에 따르면, 임신중절과 같은 일부 의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책 관련 의제들에서 일반 유권자들의 의견 분포는 지난 수십 년간 의외로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 엘리트나 고관여층과 달리, 다수의 일반 유권자들의 위치는 크게 극단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개별 정책 내에서의 선호나 이념적 강도가 크게 변하지 않았음에도, 왜 정파적 적대와 갈등은 더욱 심각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개별 의제 내에서 태도의 급진화보다는 여러 의제 전반에 걸친 태도의 정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 의제 내에서의 태도 분포는 동일하더라도, 한 의제에서의 태도를 통해 다른 의제에서의 태도를 예측할 수 있는 일관성이 강해진다면 이는 곧 광범위한 이념적 대륙의 형성을 의미한다. 성소수자 권리보장에 우호적이면서도 공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에 찬성하거나, 환경 보호를 중시하면서도 감세를 선호하는 이념적 불일치는 모든 의제를 가로지르는 절대적 다수파의 형성을 억제함으로써 타협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념적 불일치 대신 정렬이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정파적 선호는 곧 조세, 기후 변화, 외교, 의료, 사회보장 정책 등 모든 영역에서의 특정한 방향의 선호를 의미하게 된다. 즉, 민주당 지지자라면 증세, 탄소배출 감축, 전국민 의료보험, 사회안전망 강화를 선호하며 공화당 지지자라면 이 모든 의제들에서 정반대의 선호를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울타리가 높게 쳐지며 정파 사이의 경계가 뚜렷해지는 것과 같으며, 유권자들을 배타적인 신념 체계 내에 가둠으로써 정치적 파벌에 기반한 적대감을 증폭시킨다. 각각의 개별 의제 내에서의 차이는 크지 않더라도, 여러 의제간에 걸친 반복적인 차이의 인식은 곧 정서적 거리감과 적대로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정렬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경제, 외교 등과 같은 전통적인 정책 의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치 유출된 기름이 바다를 오염시키듯, 이전에는 정치와 전혀 무관하다고 간주되었던 비정치적 영역—문화적 취향, 소비 패턴, 여가 활동 등—에서의 선호가 역시 정파적 선호와 정렬을 이루는 현상이 관측된다. 예컨대 민주당원은 라떼를 마시며 전기차를 구매하지만, 공화당원은 블랙커피를 마시며 픽업트럭을 구매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정책에 대한 선호의 쏠림을 넘어, 생활 양식의 충돌이자 정체성 간의 대결이 오늘날 여론 양극화의 본질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오늘날 고도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시민들이 파편화된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소비 패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됨에 따라, 생활 양식과 정체성이 분열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더욱 두드러진다. 개별적 정책 의제에 큰 관심이 없는 정치 저관여층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속한 취미 공동체나 내집단이 특정 정파의 신념체계와 정렬을 이루고 있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정파적 적대감의 당사자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된 정체성 블록에 기반한 적대가 고착화될 경우, 이는 정책적 개입이나 단순한 정보 제공만으로는 해소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여론 양극화를 단일 의제 내 분포의 쏠림으로 볼 것인지, 의제 간 정렬로 볼 것인지, 혹은 생활세계의 군집화로 볼 것인지에 따라 현상 이해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일한 정의에만 의존한 분석은 사회 분열에 대해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단일 의제 내에서의 쏠림의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정서적 양극화는 실체적 기반이 없는 심리적 기작에 의한 현상이며 따라서 개인의 정신건강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의제 간의 정렬에 초점을 맞춘다면 거대한 이념적 분열의 증거를 포착할 수 있으며, 더 구조적이고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양극화가 어느 차원에서 심화되느냐에 따라 갈등의 성격이 달라진다. 현재의 여론 양극화가 의견의 분포 문제라면 각 의제에서 중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정책적 대안 개발이라는 접근이 유효하겠지만, 의제간 정렬 문제라면 이념 패키지를 제공하는 정치 엘리트나 이데올로그의 다양성 증진이 우선되어야 하며, 생활세계까지 연계된 정체성의 군집화 문제라면 생활세계에서 교차적 정체성을 활성화하는 사회적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단선적인 현상이 아니라 급진화, 밀집화, 군집화라는 다층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여론이 양극화되어 있다는 진단을 내릴 때 단순히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묻는 것을 넘어, 어떤 의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는지 분석해야 한다.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분열과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균열이 공존의 토대를 파괴하는 전면전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타협을 통해 공존의 기반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바로 균열 그 자체에 대한 정교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Abramowitz, Alan I., and Kyle L. Saunders. "Is polarization a myth?" The Journal of Politics 70, no. 2 (2008): 542-555.
Baldassarri, Delia, and Peter Bearman. "Dynamics of political polarization."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72, no. 5 (2007): 784-811.
Baldassarri, Delia, and Barum Park. "Was there a culture war? Partisan polarization and secular trends in US public opinion." The Journal of Politics 82, no. 3 (2020): 809-827.
Boutyline, Andrei, and Stephen Vaisey. "Belief network analysis: A relational approach to understanding the structure of attitude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22, no. 5 (2017): 1371-1447.
DellaPosta, Daniel. "Pluralistic collapse: The “oil spill” model of mass opinion polarization."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85, no. 3 (2020): 507-536.
DiMaggio, Paul, John Evans, and Bethany Bryson. "Have American's social attitudes become more polarized?."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02, no. 3 (1996): 690-755.
Evans, John H., Bethany Bryson, and Paul DiMaggio. "Opinion polarization: Important contributions, necessary limitation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06, no. 4 (2001): 944-959.
Hetherington, Marc J., and Jonathan Weiler. Prius or pickup?: How the answers to four simple questions explain America's great divide. Mariner Books, 2018.
Iyengar, Shanto, Yphtach Lelkes, Matthew Levendusky, Neil Malhotra, and Sean J. Westwood. "The origins and consequences of affective polarization in the United States."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22 (2019): 129-146.
디지털사회(Digital Society)는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Center for Digital Social Science)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리프입니다. 디지털사회의 내용은 저자 개인의 견해이며, 디지털사회과학센터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전체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
